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누구에게나 딱 들어맞는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사는 방법에 대해 충고하거나 좋은 길을 알려주려는 친절한 책들이 끊임없이 출간되어 독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저명한 광고인 중 한사람인 박웅현이 펴낸 '여덟 단어'라는 책 또한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랬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대로 된 나의 삶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 기술과 과학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그에 따라 우리의 삶도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현실화됨으로 인해 우리의 일상생활은 비교도 할 수 없게 편리해 진 것이 사실이지만, 삶의 질은 높아지지 않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간다.
무엇이 문제일까. 국민의 대다수가 당장 하루의 끼니를 해결하기도 어려울만큼 가난했던 시절이 불과 몇십년 전이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비싼 자동차를 굴리지만 그것이 행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상대적 빈곤감에 빠져 들었으며, 경계를 긋고 비슷한 무리들끼리만 어울리다 보니 소통하는 법을 잃어 버렸다.
'여덟 단어'라는 책을 지은 박웅현은 인생의 본질을 깨달은 철학자도 아니요 종교인도 물론 아니다. 물론 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둬 그 이름이 알려졌다고 하지만, 그 역시 치열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인해 그의 글들이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허한 가르침이 아닌,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도 각자가 처한 현실 속에서 골라 취할 수 있는 선택지를 던져주는 느낌이라서 좋다. 선택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그가 여덟 가지 키워드로 풀어낸 인생을 통해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고 삶의 가치를 바로 세움으로써 자신만의 삶을 구체화시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 또한 책의 서문에서 귀 기울여 주시되, 큰 기대는 하지 않길 바란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 인생은 몇번의 강의와 몇 권의 책으로 바뀔 만큼 시시하지 않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 있는 것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결국 모두의 인생은 온전히 자신의 판단에 따른 선택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지 결코 누군가의 충고나 가르침에 의해 결정되어져서는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
박웅현은 살아가면서 꼭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을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라는 여덟 가지 키워드로 풀어내고 있다. 각각의 키워드들은 독립된 것처럼 보여지지만 결국은 연결이 되면서 하나의 방향으로 모여 들게 된다. 모두가 공감가는 내용들이었지만 내겐 특히나 견과 현재라는 두 키워드가 유난스럽게 다가왔다.
견(見)이란 말 그대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눈을 뜨고 보여지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눈을 뜨고 있는 내내 우리는 수많은 정보들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은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많다. 남들과 다르게 보는 법, 좀더 자세하고 세밀하게 살펴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탓이다.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어서인지 이런 그의 지적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곳, 같은 사물을 두고 사진을 찍는다해도 각자의 결과물은 서로 달랐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피사체로 담아낸 누군가는 분명 나보다 견(見)을 잘 한 것이다. 정형화되고 고착화된 관념을 뛰어넘어 사물의 본질 자체를 포착하고 표현해 낼 수 있으려면 박웅현이 말한 것처럼 낯설게 보고, 제대로 들여다보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겠다.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 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 조은, <언젠가는> 중에서
현재라는 키워드 역시 눈여겨볼 만 하다. 박웅현은 '현재'라는 키워드를 설명함에 있어 '개처럼 살자'라는 단순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저자는 이를 "Seize the Moment, Carpe diem(순간을 잡아라, 현재를 즐겨라)"의 박웅현식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덧붙여서 이 말이 결코 현재의 쾌락을 맘껏 즐기라는 의미가 아니라 순간 순간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뜻임을 강조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결국 순간순간들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인생 전체를 뭔가 거창하게 디자인하기 보다는 매순간 닥치는 상황,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성의를 다해 대하는 것이 결국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현명한 방법인 것이다. '하늘 아래 가을의 작은 나뭇잎 이상 위대한 것은 없다'는 장자의 말에 담겨있는 삶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박웅현은 여덟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얘기했지만 사람마다의 키워드는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키워드로 정리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을 깨닫고, 나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과 세상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그리하여 바보처럼 단순하게, 자신의 판단을 믿고 인생의 정답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각박한 세상살이도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소망을 가져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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