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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풍경을 그리다 - 너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풍경 35

by 푸른가람 2014.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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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를 주자면 한 60점 정도? 겨우 과락은 면했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다 하겠다. 사실 60점도 과하다. 제 아무리 남이 쓴 책읽듯 최대한 객관화시켜 보려 노력했다한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라 하지 않던가. 남에게 돈 받고 팔 목적으로 책을 내려면 좀더 가다듬고, 꼼꼼히 살펴볼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따끔한 충고를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타고난 재주가 모자란 것이 한두가지일까마는, 그 중에서도 그림 그리는 솜씨가 없기로는 어려서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무언가를 상상해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물론, 바로 눈앞에 있는 사물을 그리는 것 또한 아주 잼병이다. 분명 나무를 그렸는데 핫도그가 그려지는, '그림 컴플렉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내가 사진이라는 구세주를 만난 건 아주 놀라운 행운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 사진을 통해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뷰파인더 속 풍경에 상상력을 더해 더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 욕심으로 십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을 누볐다. 때로는 자연이 주는 찰나의 선물에 황홀했고, 때로는 고즈넉한 산사에 울리는 풍경소리에 잠시 마음을 잃기도 했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사진과 글솜씨에 좌절해야 했다.


철들지 못한 영혼을 잠시 내려놓기에 절과 숲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책에 소개된 서른 다섯 곳 중 대부분이 깊은 산중에 아늑하게 터를 잡고 있는 고찰들이다. 더 풍성한 볼거리와 맛난 먹거리를 가진 곳들이 허다하다. 독자들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친절하게 여행법을 소개하는 책들 또한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지만 이 책은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시끄러운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곳들을 담아보려 한 노력만이 전부라 하겠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이 책에서는 화려한 글솜씨도, 탄성을 자아낼만한 잘 찍은 사진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럴만한 재주가 없는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책을 읽는 누군가와 함께 사진과 글로 그려진 풍경 속을 함께 걸어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공감의 서늘한 바람에 흩날리며 우리 또한 풍경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여행을 통해 헛된 욕망들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어 돌아왔듯 그 누군가도 그러길 하는 바람인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긴 하겠지만 몇권의 책을 더 내고 싶다. 물론 지금보다는 좀더 나은 글과 사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선행되기는 하지만, 모자란 것은 열정과 노력으로 메꿀 수 밖에 없다. 언제 끝날 지 모를 여정에 그대도 함께였음 좋겠다. 혼자 보다는 둘이 좋겠고, 마치 하나인듯 움직일 수 있는 여럿이라면 더욱 좋겠다. 우리의 남은 날은 더욱 풍성한 여행이 되길 기원한다. 길은 결국 길 위에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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