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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라고 하면 너무 박한 대접일까.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가 중 한명이라고 해 두자. 본업인 소설이 아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어떨까 궁금했다. 단지 단순한 그 이유 하나만으로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라는 다소 생뚱맞은 제목을 가진 그의 에세이 한권을 읽어 보게 됐다.
무라카미 스타일로 쓰는 에세이의 원칙은 이렇단다. 타인의 험담은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 변명이나 자랑을 되도록 하지 않기, 시사적인 화제는 가능한 피하기가 그것이다. 학창시절 배운대로 표현하자면 경수필, 미셀러니 수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글은 가볍고 일상적이고 담백했다.
그렇다고 그의 본업인 소설 쓰기가 아니라고 해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에세이를 그저 쉽게 생각하고 쓰지는 않은 듯 하다. 분명 그는 "나의 본업은 소설가요, 내가 쓰는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맥주 회사가 만든 우롱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나는 맥주를 못 마셔서 우롱차 밖에 안마셔' 하는 사람도 많으니, 이왕 그렇다면 일본에서 제일 맛있는 우롱차를 목표로 하겠습니다."라고 공표했으니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주류 브랜드 1등인 회사에서 주종목이었던 맥주의 신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테지만, 전혀 다른 분야인 우롱차를 만드는 것, 그것도 1등 제품을 새롭게 만들어 보겠다는 것은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는 최고 작가의 자신감을 넘어 선 자부심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라는 책에 담긴 글들은 일본의 한 패션잡지에 '무라카미 라디오'에 연재되었던 글들이라 한다. 아무래도 패션잡지의 성향상 젊은 여성들이 주된 독자층이 되었을테고, 글들 또한 그 독자층에 알맞는 느낌과 문체로 쓰여졌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능력은 역시 아주 사소로운 일상을 읽어볼 만한 글로 재탄생 시켜낼 수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일 거다.
그의 글 중에서 로마에서 처음 운전을 배웠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삼십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처음 운전을 배워 극성스럽기로 유명한 로마 시내를 초보 운전자로 돌아 다녔을 그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운전대만 잡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로는 우리나라 역시 만만찮지 않은가. 길은 좁고 차는 많아서 양보심은 줄어들고, 약삭빠른 운전 기술만 늘어가는 우리 모습이 그 글에 그대로 투영되는 느낌이었다.
프로야구가 재미없어졌다고 하는 것도 그렇다. 무라카미가 보는 일본 프로야구도 그렇지만, 인기 거품이 잔뜩 끼어있는 우리 프로야구의 현실도 별반 다르진 않다. 양적 성장에만 치우쳐 야구의 본질에 대한 선수들의 진지함과 팬들의 안목은 갈수록 한심해 지는 수준이다. 한 경기 백 오십번의 피칭이 있는 동안 정확히 백 오십번의 까치발을 했던, 마치 표범처럼 온 몸에 힘이 넘쳐났던 고액 연봉자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기억에 관한 글은 내게도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야구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했다.
마지막으로 나이에 대한 생각. 1949년생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제법 나이를 먹었지만 스스로를 절대로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는 아저씨를 지나 영감이 되고도 남을 나이지만 "나는 아저씨니까"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진짜 아저씨가 되기 때문이란다.
그의 얘기처럼 사람이란 나이에 걸맞게 자연스럽게 살명 되지 애써 더 젊게 꾸밀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굳이 자신을 아저씨나 아줌마로 만들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이에 관해 가장 중요한 것은 되도록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것.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 꼭 필요할 때 혼자서 살짝 머리끝쯤에서 떠올리면 된다는 그의 말에 짝짝짝 박수를 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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