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하고 이상한 여행기'라더니 그리 야하지도 않고, 여행지에서의 느낌에 대한 세세한 소개도 없으니 이상한 에세이가 맞긴 맞다. 글자 하나, 표현 하나에 집중하지 않고 본 탓 인지 반나절 만에 뚝딱 책 한권이 읽혀졌다. 처음 느낌은 조금 불쾌했으나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는 다행스럽게도 불편함이 많이 사그라든 기분이다.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이란 책을 함부로 말하자면 김얀이라는, 나이 서른 먹은 여자의 남성 편력을 부끄럼 없이 끄적여 놓은 것에 불과하다. 13개 도시에서 만난 13명의 남자 이야기. 아무리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시집도 안간 아가씨가 "나 이렇게 많은 남자들과 만나 하룻밤 섹스를 즐겼소" 하는 고백이 기꺼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도대체 뭘 읽고 어떤 걸 느껴야 할 지 혼돈스러웠다. 김얀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순전히 이병률이란 이름 석자에 이끌려 책을 골랐던 까닭에 그녀의 글보다 그의 사진에 대한 기대가 컸었던 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읽는 눈이 여전히 모자란 나라서, 이 '야하고 이상한 여행기'의 텍스트 위에 따로 또 같이 겹쳐져 있다는 사진들이 주는 의미를 온전히 깨달을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1982년생 여자 김얀이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분명 낯선 침대에서 뒹굴었던 수많은 남자들, 어찌보면 헤퍼 보이기까지 한 지난 연애를 자랑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 거디. 실재했든, 혹은 상상 속에 존재했든,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엉망진창에 실수투성이의 날들'이었던 그녀의 이십대를 근사하게 끝맺음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방콕, 오사카. 싱가포르, 파리, 서울, 믈라카, 시엠레아프, 홍콩, 오타와, 뮌헨, 프라하를 거쳐 마지막 여로였던 베이징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동안 사랑에 무지해서, 사랑을 두려워해서 단 한번도 즐기지 못했던 사랑을 늦은 가을 베이징에서 비로소 만나게 된 그녀가 앞으로도 늘 그 사랑 안에서 행복하길 빌어 본다.
그러고 보니 책을 읽은 보람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작가 김얀을 만나 그녀의 생각과 서른살 인생을 살짝 엿보고 나니 나의 우주가 조금은 더 팽창된 느낌이 든다. 나와는 또다른 사람, 또다른 세상이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니, 곱씹어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녀와 내가 아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부디 오늘 밤 나의 낯선 침대 위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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