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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다

by 푸른가람 2011.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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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최고'였다고 생각하는 두 편의 드라마가 있다. 질곡의 우리나라 현대사를 다뤘던 '모래시계'가 그 중 하나요, 철조망 너머 애처롭기만 하던 대치와 여옥의 키스신을 남겼던 '여명의 눈동자'가 또 하나다. 단순한 드라마 이상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극의 완성도나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났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꺼리'를 많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당시에 어떻게 그런 진보적(?)이고 파격적인 주제를 다룬 드라마가 방영될 수 있었을까 신기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모래시계야 문민정부 출범 이후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명의 눈동자' 방영 당시만 해도 아직은 군사정권의 잔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정국에 이르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5천년 민족사에 있어서도 가장 파란만장한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이후 사대교린을 국가 외교정책의 기본으로 삼았고, 왜란과 호란 등을 겪으면서 외세에 치욕을 겪은 적은 여러차례 있었다지만 1905년 을사늑약처럼 공식적으로 주권을 잃은 것은 유일무이한 치욕의 역사다.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참 마음이 불편했었다. 그때만 해도 피가 철철 끓는 대학생 때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국민들도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것이 바로 치욕스런 친일의 역사가 제대로 척결이 되지 못했다는 점을 들지 않을까 싶다.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과 침탈에 앞장섰던 민족 반역자들이 광복 이후 정치적 이유로 인해 다시 한번 옷을 바꿔입고 새로운 정부의 주역으로 등장해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은 좌절스러운 현실이다.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겪었던 프랑스의 경우 지금까지도 나치 부역자들에 대해 추상과 같은 역사적 단죄를 하고 있다는 것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국가와 권력의 주체에 있어서 정통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정통성의 사전적 의미는 그 사회의 정치체계, 정치권력, 전통 등을 올바르다고 인정하는 일반적 관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유사 이래로 역사적 정통성이 희박하거나 아예 없는 권력들은 그 치명적 약점을 감추기 위한 노력들을 역사 왜곡이라는 방법까지 동원해 시도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다'라는 이름의 책은 한흥구, 정태헌, 이만열, 서중석, 정영철 교수 등이 지난 2008년 겨울 '한국 근현대사 특강'에서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펴낸 것이다. 2008년 이후 지금까지도 역사학계, 특히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두고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에서는 좌편향된 역사를 바로 잡겠다는 이른바 '뉴라이트' 진영에서 제기한 식민지 근대화론, 독립운동과 친일파, 뉴라이트의 역사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정체성, 북한의 현대사를 바라보는 관점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친일파가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 있는 현실에서 지금껏 친일의 역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함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인해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 자체가 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어느 편에 서 있든간에 불순의 의도를 가지고 역사를 왜곡하거나 그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민족 앞에 크나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비열한 행위를 통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음도 한흥구 교수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얘기하고 있다.

"우리의 현대사는 그 굴곡 많은 과정에 대한 솔직한 기록이어야 한다. 기쁜 것은 기쁘게, 슬픈 것은 슬프게, 아픈 것은 아프게 있는 그대로를 정직하게 기록해야 한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고 익히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보다 정직하게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살아온 경험을 전수하려는 작은 노력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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