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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선동열 감독 6년의 빛과 그림자

by 푸른가람 2011.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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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최장수 감독이었던 선동열 감독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팀을 급작스럽게 떠났습니다. 시원하다는 반응도 있고,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감독 선동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번에 삼성 구단에서 선동열 감독을 내치는 방식은 일반적인 인간 세상의 도리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면 분명 곱게 보이지는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전임 김응룡감독의 후광 덕분에 적지나 다름없었던 대구에 무혈입성했던 선동열 감독은 6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삼성호를 좌지우지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현장에서 휘둘렀습니다. 그 기간 동안 삼성은 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 2연패라는 대역사를 이루기도 했고, 13년 동안 이어져오던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에 종지부를 찍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선동열 감독 6년의 공과를 두고 논란이 많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 또한 있는 법입니다. 개인적으로 선동열 감독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었지만 그의 평가에 대해서는 최대한 객관적이고 싶습니다. 그가 대구의 프랜차이즈 출신이 아니었기에 모진 소리를 들었던 적도 많았지만 똑같은 이유로 그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지 못했던 부분도 많았음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여러모로 삼성의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떠나는 감독입니다. '파리목숨'이라는 삼성 라이온즈 감독 자리를 무려 6년(재계약기간을 다 채웠더라면 10년이었겠죠) 이상이나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고, 화끈한 공격야구에서 지키는 야구로 극적인 변화를 일궈냈으니 앞으로도 삼성 역사를 되돌이킬 때면 늘 선동열 이라는 이름 석자가 늘 언급될 겁니다.



삼성 역사상 전인미답의 '한국시리즈 2연패' 위업을 달성하다

2004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는 역대 최고의 포스트시즌으로 회자될만큼 명승부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삼성의 역할은 비운의 조연이었습니다. 후회없는 한판 승부였다고는 하지만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기에는 무언가 부족했었고, 이에 삼성 구단은 수석코치였던 선동열을 김응룡 감독 후임으로 전격적으로 임명합니다.

한국 최고의 투수였지만 지도자 경험은 일천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그 어느 곳보다 지역색이 강한 대구를 연고로 하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 자리에 철저한 패배의 아픔을 안겨주었던 해태 타이거즈의 심장을 앉힌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결정이었죠.

모든 것이 정치적 결정이었고, 그 이전에 굳건하게 형성되어 있던 김응룡-김재하 라인이 구단 윗선과의 교감에 성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며칠전 갑작스런 선동열감독의 사퇴를 두고 정치적 판단이니 얘기들이 많지만 사회생활 치고 정치적이지 않은 것들이 또 얼마나 될까요. 선동열감독의 등장과 퇴장 모두 그런 것이었으니 이번 결정을 두고 선동열감독을 동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주위에서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반신반의하는 상황에서 선동열감독은 보란 듯이 감독 부임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룩합니다. 그것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단 한번의 패배도 기록하지 않는 완벽한 승리를 거뒀지요. 선동열 매직은 이듬해인 2006년 한화와의 한국시리즈에서 4승 1패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최고조에 이릅니다.

혹자는 선동열감독을 운장이라고 표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삼성 역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 2연패는 사실 선동열감독의 능력 덕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2004년 준우승때의 전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삼성 구단은 여기에다 현대 전력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던 심정수와 박진만까지 FA로 영입하며 선동열 감독 부임 선물을 해준 것이지요.

감독이 잘했다기 보다는 누가 삼성 감독이 되었다고 해도 우승할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그런 평가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선동열감독 부임 이후 투수력 중심의 '지키는 야구'를 체계적으로 정착시켰다는 공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와 같은 삼성의 뻥야구로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일궈낼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외부 영입 No", 더이상 돈성은 없었다

과거 삼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가 '돈성'이 아닐까요. 물론 적극적이고 과감한 투자라고 치부하는 이들도 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에 목메달기 시작하면서 삼성은 중복투자를 너머 '묻지마 투자'까지 일삼았습니다. 이로 인해 FA 선수들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뛰었고 '먹튀'와 프로야구의 빈부격차 심화라는 그림자도 짙어졌습니다.

선동열 감독 이후 더이상 '돈성'은 없었다. 그는 외부 영입을 통한 전력 강화는 없을 것이라며 부임 초기부터 못을 박았습니다. 매우 바람직한 선택이었고 이후 그 약속을 성실히 지켜냈습니다. 차우찬과 안지만으로 대표되는 젊은 투수들의 잠재력이 드디어 꽃을 피웠고, 이영욱과 오정복 등에게도 기회를 주며 팀내 경쟁을 통한 전력 강화를 꾀했습니다.

인위적인 세대교체 노력은 대체적으로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긴 했지만 결국 베테랑 선수들의 자리를 위협하게 됐고 양준혁과 박한이가 결국 그 직격탄을 맞기도 했지요. 외부 영입은 없다던 선동열감독의 약속도 트레이드 파동 끝에 히어로즈에서 장원삼을 1년만에 다시 빼오는 만행을 저지르며 허무하게 깨졌지만 2군 육성을 통한 선수 발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야 할 것입니다.



'지키는 야구'로의 파격적인 대변신을 이루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투수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이 사실입니다. 과거 삼성이 압도적인 공격력을 보유하고서도 번번히 정상 문턱에서 고배를 들었던 이유도 결국은 상대의 두터운 방패에 철저히 막혔던 때문입니다. 선동열감독은 그런 삼성의 아픈 실패를 결코 반복하지 싶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그가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지키는 야구' 였습니다. 선수들도, 팬들도 전혀 익숙치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석점 주면 넉점 내는 것이 삼성의 전통적인 야구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1점만 내고 단 한점도 주지 않는 야구를 하겠다고 하니 그것이 가능할 거라고 그 누가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선동열감독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쌍권총과 KO 펀치 등으로 불리는 막강한 불펜진 구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들을 키워낸 것도 결국은 그의 공이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5회만 지나면 그날 경기의 승패를 짐작할 수 있는 재미없는 야구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삼성 야구역사상 선동열 감독의 '지키는 야구'는 그야말로 경천동지할만한 대변혁이었다는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 포스팅을 통해 선동열 감독 6년의 공과를 정리해 보려고 했는데 시간 여유가 없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선동열감독의 그림자를 파헤쳐 볼 생각입니다. 이제 선동열 시대는 가고, 삼성 역사상 최초의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인 류중일 시대가 열렸습니다. 갑작스런 감독 부임으로 정신이 없겠지만 차근차근 잘 준비해서 다시한번 삼성의 전성기를 이끌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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