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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히어로즈에게서 '현대의 향기'가 느껴지다

by 푸른가람 2009.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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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에 돛단 듯 개막전 2연승의 순항을 하던 삼성이 예상치 못했던 암초에 걸렸다. 그것도 만만하게 여기던 상대에게 당한 연패여서 충격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삼성에 충격의 연패를 안긴 팀은 다름아닌 히어로즈였다. 2000년대 절대강자 현대의 몰락과 함께 위기의 프로야구계에 홀연히 나타났던 팀. 재계 라이벌 삼성과 현대의 대결구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히어로즈에게선 '사라진 현대의 냄새'가 난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떠밀리듯 프로야구판에 뛰어든 삼성은 사실 적수가 없었다. 7,8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경북고와 대구상고, 두 야구명문고를 연고에 두고 있던 삼성은 국가대표만으로도 엔트리가 넘쳐날 정도로 전력이 막강했다. 게다가 모기업 삼성의 자금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프로원년을 함께 했던 MBC, OB, 롯데, 해태, 삼미는 삼성으로선 격에 맞지 않는 상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두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전혀 뜻밖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삼성은 프로원년 후기리그 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긴 했지만 만만하게 봤던 상대 OB에 속절없이 무너지더니, 이후 롯데, 해태, LG를 상대로 준우승만 여섯차례 거듭하며 '제일주의' 삼성의 자존심에 상처만 입히고 말았다.

90년대 중반에 접어들자 상황은 더욱 꼬여갔다. 근근히 버티던 삼성 연고지의 자원은 고갈되기 시작했고, 극심한 투타의 불균형은 이내 4강권에도 턱걸이하기 힘들 정도로 심화되었다. 때맞춰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공룡' 현대가 프로야구판에 뛰어들었다. 인천 연고의 태평양을 거액에 인수한 것.

야구팬들은 이제서야 재계의 빅쓰리가 제대로 만났다며 기대에 부풀었지만, 삼성 입장으로선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현대에게만은 질 수 없다"는 구단 내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며 선수단이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안그래도 준우승 징크스로 굳어있던 삼성으로선 현대의 출현이 또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1996년 상대전적 5승 13패로 시작된 지긋지긋한 삼성의 현대 징크스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이듬해에도 7승1무10패로 헤매더니 1998년에는 4승14패라는 낯뜨거운 성적표를 받았다. 1990년대 중,후반이 삼성의 침체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대전적에서 일방적으로 밀린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삼성이 현대와의 상대전적에서 처음으로 우위에 섰던 것이 2002년이다. 2002년은 삼성이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한 해이기도 하다. 그해 삼성은 현대를 상대로 11승1무7패를 거두며 한국시리즈 준우승 징크스와 더불어 현대 징크스에서도 벗어나는 듯 했다.

그러나 반란은 잠깐이었다. 이듬해에도 12승7패를 거두며 한껏 기세를 올렸지만 현대가 마지막 불꽃을 태웠던 2003년 이후 현대가 비운의 해체를 맞이한 시점까지도 삼성에게 현대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상대. 1984년처럼 져주기라도 해서 피하고 싶었지만, 상대를 고를 수 있는 자리에 섰던 것은 언제나 현대였다.

2007년 시즌을 끝으로 현대는 사라졌다. 삼성의 지긋지긋한 현대 징크스도 이내 사라지는 듯 싶었다. 그러나 현대의 빈자리를 메운 히어로즈에게서 현대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4월 7, 8일 목동구장에서 벌어졌던 삼성과 히어로즈의 개막 2연전은 흡사 90년대 후반 삼성과 현대의 경기를 오버랩 시키기에 충분했다.

비슷한 안타를 치면서도 점수는 내지 못하는 타자들. 투수는 결정적 고비때마다 속절없이 적시타를 허용하며 타자들의 추격의지를 꺾고 만다. 기다리던 적시타는 터지지 않고, 병살타는 약방의 감초처럼 끊이질 않는다. 모처럼 기회를 잡아 나간 주자는 의욕만 앞선 나머지 투수의 견제구에 횡사한다.

연패탈출을 위해 에이스 배영수를 투입한 3차전에서도 삼성은 중반 이후 역전을 허용하며 5:8로 뒤지고 있다. 이러다간 올시즌 또 반갑잖은 새로운 징크스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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