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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WBC 일본전 참패, 한국야구 재도약의 쓴 약으로 삼아야

by 푸른가람 202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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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회에 참가중인 우리 대표팀은 10일 저녁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 4-13으로 대패하며 2연패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2패만을 기록중인 중국과 함께 B조 최하위로 밀리며 1라운드 탈락이 유력한 상황입니다.

경기를 중계했던 야구인들마저 쓴소리를 쏟아낼 수 밖에 없었던 졸전이었습니다. 일본을 두고 숙적이니 라이벌이니 하는 단어들을 이제 갖다붙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양국의 야구 격차는 크게 벌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경기였습니다. 예전에도 한일 간의 야구 인프라와 전반적인 기량 차이는 뚜렷했지만 결코 일본에는 질 수 없다는 선수들의 투지와 구대성, 류현진 등 난공 불락의 에이스들이 건재했기에 나름 선전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야구에 있어서는 변방으로 밀려난 느낌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WSBC 랭킹에 만족하며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놀랐던 것이 그동안 야구 후진국으로 만만하게 봤던 나라들의 경기력이 많이 향상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충격적인 패전의 아픔을 안겼던 호주는 물론이고 네덜란드, 이탈리아 역시 야구 강국들이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과연 앞으로 남아 있는 중국과 체코와의 경기에서 우리가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어제 경기로 돌아가 눈에 띄는 몇 장면을 복기해 보려고 합니다. 일본전 초반은 베테랑 김광현(SSG랜더스)의 역투가 눈부셨습니다. 볼 스피드는 시속 150km을 손쉽게 넘기는 일본 투수에 미치지 못했지만 제구력과 구위만큼은 그들을 능가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강타자 오타니를 비롯해 2회 수비를 마칠 때까지 무려 다섯 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운 장면은 그나마 어제 경기의 위안거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쉬운 것은 3회말 수비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르빗슈를 상대로 양의지의 선제 투런 홈런과 이정후의 적시타가 이어지며 3-0 리드를 잡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일본 타선 중에서 그나마 만만한 8, 9번타자를 상대로 풀카운트 접전 끝에 연속 볼넷을 내주며 화를 자초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입니다. 이 장면이 일본전 참패의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주심의 볼 판정에도 아쉬운 장면이 있었지만 지나치게 코너웍을 신경쓰기 보다는 자신의 공을 믿고 정면 승부해보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습니다. 

일본의 내노라하는 강타선을 상대로 1, 2회 정말 혼신의 투구를 쏟아낸 김광현이었기에 3회 들어서는 공의 위력이 확연히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면 벤치에서 좀 더 발 빠른 대처가 필요했다고 봅니다. 전력의 열세에 놓여 있는 일본전에 있어서는 투수 교체 타이밍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데, 이강철 감독과 정현욱 투수코치가 그런 부분에서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하긴, 김광현 빼고는 믿을만한 투수가 없다는 것이 결정적 한계였습니다. 최대한 많은 이닝을 김광현이 맡아줘야만 일본과 대등한 경기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3회 들어 현격한 구위 저하가 눈에 보였을 정도였고, 원태인과 김윤식이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벤치의 대응이 아쉽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것도 다 결과론에 불과하겠지요. 이후 등판한 투수 중에 제대로 일본 타선에 맞서 존재감을 드러낸 투수가 전무했으니까요. 이것이 한국야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두번째로 토미 에드먼과 라스 눗바, 한국과 일본이 선택한 두 메이저리그의 활약도 차이가 났습니다. 일본 대표팀의 중견수로 선발 출장한 눗바는 0-3으로 뒤지던 3회말 무사 1, 2루 상황에서 김광현을 상대로 천금같은 적시타를 터뜨리며 추격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7회말 1사 상황에서는 짧은 우전안타를 친 후 2루를 노리는 재치있는 베이스런닝을 선보였습니다. 눗바의 야구 센스가 돋보이는 장면이었습니다.

그의 활약은 수비에서 더욱 빛났습니다. 5회초 수비에서 눗바는 김하성의 바가지 안타성 타구를 전력 질주해 다이빙 캐치로 잡아내는 호수비를 펼쳤습니다. 3-4로 뒤지던 한국으로선 이 타구가 행운의 안타로 이어졌더라면 경기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도 있었던 좋은 기회였지만 눗바의 진기명기에 가까운 결정적 수비로 분위기가 꺾이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큰 경기에서 수비의 중요성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 비해 한국 대표팀으로 뛰고 있는 에드먼의 존재감은 크게 도드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중국전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도루 시도 실패로 허무하게 경기를 끝냈던 토미 현수 에드먼은 일본전에서도 명예 회복에 실패했습니다. 타석에서는 4타수 무안타에 그치며 단 한차례도 1루 베이스를 밟지 못했습니다. 수비에서는 2회 요시다 마사타카의 내야 땅볼 타구를 잡아 1루에 악송구하는 실책을 저질러 메이저리그 골든글러브 수상자의 체면이 이래저래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전력분석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첫 경기 상대였던 호주는 물론이고, 체코, 중국 역시 전력 파악이 쉽지 않은 팀이었기에 세세한 정보 파악과 철저한 대비가 필요했었는데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전임 삼성라이온즈 감독이었던 허삼영감독까지 전력분석팀으로 합류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허파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거 같습니다.

이강철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 코칭스탭의 능력에도 의문이 갑니다. 언론에서는 '강철매직'을 선보여 줄 것이라며 이강철 감독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었는데 지금까지 드러난 호주전과 일본전 경기 운영은 수준 이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투수 교체 타이밍은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경기의 맥을 잘 짚지 못한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대표팀의 인력 풀 자체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한계는 있겠지만 적재적소에 선수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답답한 상황입니다. 

일본전 대패 이후 예상했던 대로 한국 야구대표팀을 질타하는 기사들로 도배가 되고 있습니다. 한일전의 특성상 패배를 쉽게 인정할 수 없는 국민 정서에다, 어제처럼 말도 안되는 경기력으로 참패를 당하게 되면 당연히 한동안은 분노가 들끊게 될 겁니다. 하지만 조금 지나친 면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당연히 넉넉한 점수 차로 이길 수 있는 상대에 진 것도 아니고, 야구실력으로 보자면 우리나라보다 몇 수 위에 있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실력 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일본에 선전을 펼쳐왔던 것은 실력을 뛰어 넘는 선수들의 투지와 근성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 행운의 시간들이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우리를 찾아왔기도 했구요. 하지만 이번의 치욕적인 패전을 거울삼아 한국야구의 전반적인 대수술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야구계가 직면한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만 처방과 치료도 가능할테니까요. 이번 WBC 대회를 통해 객관적으로 우리 야구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문제점을 개선해 재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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