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서루의 <여행자의 책>은 말 그대로 여행자를 위한 재미난 책이다. 하지만 50여년 간 세계를 여행하고 40여년 간 여행에 관한 글을 써 온 여행 문학의 대가이자 소설가인 그의 명성에 어울리는 여행기를 기대했다면 한참 잘못 짚은 셈이다. 책을 처음 폈을 때 이게 뭔가 싶어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이 책의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여행자의 책>에는 여행자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들이 담겨져 있다. 제1장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제27장 '당신만의 여행을 위하여'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광범위하다. 때로는 여행자의 가방 속까지 들추어 보듯 꼼꼼하게 살펴 보기도 하고, 때로는 몽환적인 여행자의 시선처럼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잘 쓰여진 여행기 한편을 읽어볼 요량으로 이 책을 구입했던 나로선 당혹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폴 서루 자신의, 혹은 저명한 여행 작가의 주옥같은 글들을 여기저기서 따 와 전체의 구성을 이뤘다. 그것 또한 놀라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이나 많은 작가의 글들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고, 그 맥락에 필요한 적재적소의 필요조건들을 직감적으로 채워주기 때문이다.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많은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이 책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구분되어 진 스물 일곱 가지 항목이 제각각 독립성을 갖추고 있기에 따로 떼내어서 읽는 방법도 괜찮은 선택일 수 있겠다. 통독을 하든, 정독을 하든 독자의 선택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그 글들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며, 공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일테니까.
폴 서루. 그가 부럽기도 했고 그런 삶이 두렵기도 했다. 간혹 여행자로서의 삶을 꿈꿔 본 적이 있다. 좋아하는 여행을 하며, 글과 사진으로 여행기를 남겨 밥벌이를 하는 삶이란 얼마나 황홀할 것인가. 하지만, <여행자의 책>에 소개되어 있는 수많은 여행 작가들의 삶을 보다 내밀히 관찰해 보고 나니 그것이 그리 썩 만족스러운 것도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 장에 소개되어 있는 '당신만의 여행을 위하여'가 가장 마음에 든다. 폴 서루는 당신만의 여행을 위한 열가지 충고를 남겨 놓았다. 집을 떠나라. 혼자 가라. 가볍게 여행하라. 지도를 가져가라. 육로로 가라. 국경을 걸어서 넘어라. 일기를 써라. 지금 있는 곳과 아무 관계가 없는 소설을 읽어라. 굳이 휴대전화를 가져가야 한다면 되도록 사용하지 마라. 친구를 사귀어라. 당신이라면 몇 가지나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책을 읽고 나서 한 가지 아쉬운 기분이 든다. 나름 볼거리 많고 먹거리도 풍부하다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이 그의 책에서는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행자의 책> 속에서 한국은 17장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 편에 아주 짧게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보신탕의 주재료는 늘 개고기이다."로 시작과 끝을 맺고 있는데, 폴 서루 자신이 개고기의 식용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중국과 일본의 여행기나 여행 작가들이 군데군데 소개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한국은 소외되어 있다. 물론, 근대까지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자 은둔자의 나라 이미지가 강했던 탓도 있겠지만, 우리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책임이 더 크다 하겠다. 바야흐로 여행의 시대다. 뛰어난 여행 작가의 글이 숨겨진 보석 같은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그날이 빨리 왔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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