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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즐거운 농락 - 허봉조 에세이

by 푸른가람 2012.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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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책 한권을 선물로 받았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분이 낸 첫 수필집이었다. 맨 앞장에 '나의 천군만마'라며 친히 싸인까지 해주신 자상함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어두다 이제서야 책에 실린 글들을 찬찬히 읽어 볼 수 있었다.

화려하게 꾸미거나 척하지 않아서 읽기에 좋은 글들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이미 읽었던 글도 있었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도 많다. 몽골, 러시아, 일본, 유럽 등을 여행하며 겪었던 일들,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는 '길 위의 학교'라는 여행의 달콤함이 묻어난다.

책에는 쉰 여섯 편의 글이 실려 있다. 1956년에 태어나 올해로 쉰 여섯의 나이가 된 작가의 '센스'가 느껴진다. '인생의 릴레이경기' 라는 글에는 그녀의 곡절 많았던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순탄하지 못했던 학업과 느즈막히 시작한 말단 공무원 생활, 불혹의 나이에 한 결혼과 출산 이야기에서 교통체증으로 꽉 막히는 도로처럼 더디기만 했던 '지각 인생'의 고단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정체'와 '더딤'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던 열정과 의지는 본받을 만 하다. 단 한번도 문학 수업을 받지 못했지만 거듭된 습작을 통해 지난 2008년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 그녀의 독특한 이력이 그녀가 걸어온 삶을 증명해 준다. 매 순간 출발이 늦었던 지각대장이었지만 인생의 모든 절차를 순리대로 밟아가고 있음에 살아가는 기쁨을 느끼는 그녀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책에 실린 글들은 내게도 큰 자극이 되어 주었다. 큰 어려움을 모르고 학창시절을 보내던 내게 인생이란 여태 그랬던 것처럼 순탄한 길로 그저 뚜벅뚜벅 걸어가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암초에 걸려 항로를 이탈한 배처럼 나의 이십대도 그렇게 정처없이 세찬 바람과 파도에 흔들렸다.

어쩌면 그렇게 표류하다 끝날 수도 있었던 인생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내 삶이 그리 윤택하거나 남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는 아니지만 매일아침 출근할 직장이 있고, 가끔 취미생활을 즐길 마음의 여유는 있으니 이만하면 행복하다 여겨도 좋을 것 같다.

행복이란 게 뭐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닐테고 기준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수십억원의 로또 당첨금을 손에 쥐는 일확천금의 행운이 퇴근길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맥주 한잔의 즐거움보다 큰 행복이라고 단정할 순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물질적 조건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해지고자 하는 마음과 일상을 행복으로 채워가는 여유가 아닐까 싶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내게도 있다. 누군가에게 드러내놓고 자랑할만한 멋진 사진을 찍고 싶기도 하다. 십년 후, 혹은 이십년 후의 내 삶에 대한 밑그림도 이미 그려 놓았다. 그런 욕심과 꿈들이 그저 쉼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 풍화되어 사그라들지 않으려면 나태해지는 나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해야겠다는 각오를 이 책을 덮으며 새삼 다져 본다.

글을 쓴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보람 또한 큰 것 같습니다. 우선 솔직해집니다. 거짓으로 글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사물에 대해 깊이 알고자 하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게도 됩니다. 화를 내는 일이 줄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결국 정신이 부유해진 것이겠지요. - 책머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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