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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2012년 삼성 화수분 야구의 주인공은 정형식?

by 푸른가람 201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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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이 자꾸 생겨서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보물단지를 화수분이라고 부른다. 국내 야구계에서는 주전 선수들의 공백을 메워주는 새로운 얼굴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두산을 두고 '화수분 야구'라 부르며 부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화수분이 비단 두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팀이 어려울 때마다 홀연히 나타난 난세의 영웅들이 삼성 라이온즈에도 있었다.

삼성 화수분 야구의 주인공들은 이영욱, 오정복, 배영섭이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세명 모두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2군 출신이었지만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컨택 능력과 더불어 빠른 발로 상대 내야를 휘젖고 다니는 야구 스타일도 비슷하다. 빠른 야구를 선호하는 선동열, 류중일 두 감독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다는 점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깜짝 활약'이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영욱과 오정복은 2010년 대활약 이후 이듬해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며 주전 자리를 내줬고, 천신만고 끝에 2011년 신인왕을 차지했던 배영섭 역시 올시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기록으로 팬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2012년 삼성의 화수분 야구, 그 주인공 자리를 노리고 있는 '젊은 피' 정형식에게도 그 징크스는 이어질 것인가?


▲ 선동열 감독의 절대적 신임 받았던 이영욱

선동열 감독은 거포형 타자보다는 중요한 승부처에서 한점을 낼 수 있는 야구를 선호했다. "공격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이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대투수 선동열의 야구관이었다. 그래서 빠른 발과 컨택 능력을 가진 젊은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많이 줬다. 그런 의미에서 이영욱은 확실히 감독 운이 있었다.

2008년 삼성에 입단한 이영욱은 입단 동기 허승민의 그늘에 가려 기나긴 2군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주로 대수비와 대타로 겨우 14경기에 출장해 7타수 무안타에 그쳤을 정도로 1군 무대에서 뛸 기회가 많지 않았던 이영욱은 이듬해 2009년 백업 외야수로 자주 얼굴을 내비치며 타율 2할4푼9리 4홈런 29타점 26득점 16도루의 쏠쏠한 성적으로 가능성을 보였다.

발빠른 선수를 선호하던 선동열 감독의 눈에 들며 2010년에는 120경기에 출장하며 타율 2할7푼2리 68득점 30도루의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며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2011년에는 배영섭의 등장으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며 성적은 부진했지만 군입대를 앞두고 출전했던 SK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는 결정적인 홈송구로 팀 승리를 지켜내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 드라마틱했던 스타 탄생, 오정복

오정복의 등장은 좀더 드라마틱했다. 신데렐라 탄생이라 부를 수 있을만큼 강한 인상을 팬들에게 심어줬다. 2010년 시즌 삼성 외야 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누구 하나 외야 한 자리를 꿰찰 수 있을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박한이는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성적이 들쭉날쭉했고 2008년 20-20클럽 가입으로 주가를 올렸던 강봉규는 평범한 선수로 되돌아왔다. 우동균의 군복무로 비어있던 자리를 선동열 감독의 신임을 받고 있던 이영욱만이 선발 라인업에 매일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만만치 않은 방망이 솜씨를 자랑하는 다크호스가 나타났다. 그 주인공은 용마고등학교와 인하대학교를 거쳐 2009년 삼성에 입단한 오정복이었다. 그는 5월 2일 한화전에서 5-6으로 뒤지며 패색이 짙어가던 8회 프로 데뷔 첫 홈런을 동점홈런으로 기록한 데 이어 연장 10회 2사 1루에서 한화 마무리 데폴라를 상대로 극적인 결승 투런 홈런을 터뜨리며 스타 탄생을 알렸다.

이후 감독의 신임을 받은 오정복은 1군 무대에 출장하며 자리를 잡아 나갔다. 시즌 100경기 타율 2할7푼1리 7홈런 36타점으로 만만치 않은 타격 솜씨를 뽐냈다. 강봉규를 대신해 삼성 외야의 한 자리를 꿰찬 오정복이었지만 그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자체 청백전에서 당했던 발목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생애 첫 포스트시즌 출전 기회를 놓친 오정복은 부상의 여파로 이듬해에도 24경기에서 1할9푼2리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삼성을 떠나 제9구단 NC 다이노스에 새 둥지를 터게 됐다. 현재 경찰청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오정복은 불운을 씻고 제2의 야구인생을 화려하게 꽃 피우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 천신만고 끝에 쟁취했던 2011년 신인왕, 배영섭

2011년 시즌을 앞두고 배영섭을 주목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유신고와 동국대를 거쳐 2009년 삼성에 입단했던 그는 줄곧 2군무대를 전전했던 무명이었다. 대학 시절 '배치로'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호타준족을 자랑했지만 프로무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리 뛰어나지 못한 선구안과 땅볼이 많은 타격 스타일로는 삼성 외야에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러던 그에게 강봉규의 부상은 결코 놓칠 수 없는 천재일우의 기회였고,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을 앞세운 기민한 주루 플레이로 무주공산이었던 삼성의 1번타자를 확실하게 꿰찼다. 몇차례 치명적인 부상 속에서도 2011년 99경기에서 100안타를 채우며 타율 2할9푼4리 51득점 33도루라는 준수한 성적표를 남겼다.

월 일 두산전에서 김승회에게 손등을 맞는 큰 부상으로 사실상 시즌을 마감했다는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극적으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그는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SK 박희수를 상대로 결승타를 기록하며 2차전 MVP를 차지하는 등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LG 임찬규를 누르고 신인왕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 2012년의 새로운 화수분은 정형식?

2012년 시즌을 앞두고 삼성 외야에는 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MVP급 활약을 펼쳤던 최형우, 신인왕 배영섭에다 강력한 2번타자를 선호하는 류중일 감독의 입맛에 맞는 박한이까지 이미 세자리가 다 찼다. 군 복무를 위해 팀을 떠난 이영욱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두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박한이는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졌고 최형우와 배영섭은 까닭 모를 깊은 슬럼프에 빠진 것. 또한번 화수분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서 때맞춰 나타난 선수가 정형식이었다. 졍형식이라는 이름 석자보다 정영일의 동생으로 알려졌던 그였지만 프로에 들어와서는 입장이 달라졌다.

진흥교 재학 당시 김광현(당시 안산공고)과 함께 고교 투수랭킹 1, 2위를 다투며 미 프로야구 LA 애인절스에 입단하며 부푼 꿈을 키웠던 정영일은 결국 빅 리그 마운드에 서보지 못한 채 지난해 5월 방출돼 지금은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그 사이 2009년 삼성에 2차 2라운드(전체 12순위)로 지명된 정형식은 지난해 백업 외야수로 간간이 얼굴을 내비치며 시즌 52경기에서 타율 2할 3푼, 도루 4개를 기록했다. 그의 진가가 빛났던 것은 일본에서 열렸던 아시아시리즈 결승전에서 소프트 뱅크를 상대로 2타점 적시타를 기록한 순간이었다. 이 안타 하나로 정형식은 류중일 감독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2012년 시즌 들어 정형식은 지난해 보다 많은 출장 기회를 잡고 있다. 아직까지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매김하진 못했지만 빠른 발과 안정된 수비, 재치있는 타격솜씨를 선보이며 배영섭의 부진을 틈타 외야 한자리를 노리고 있다. 정형식은 6일 현재 시즌 77경기에 출장, 2할5푼6리의 타율과 3개의 홈런, 17도루를 기록하며 한단계 성장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번 타자로 출전한 경기에서는 3할에 육박하는 타율(.298)로 삼성 공격의 활로를 열어주고 있다.

물론 정형식이 지금껏 보여준 것만으로 이영욱, 배영섭과 같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수치상으로 드러난 기록이 이들을 제칠 정도로 뛰어난 것도 아니고 야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만한 플레이도 부족했다. 특히, 좌투수 상대 타율이 1할4푼8리에 그칠 정도로 약점을 보이고 있는 것도 그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하지만 뒤늦게 그의 진가를 인정한 류중일 감독이 1번타자로 꾸준히 기용하면서 정형식도 심리적 안정 속에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해마다 새로운 주인공을 탄생시킨 삼성표 화수분 야구, 올해의 주인공 자리를 정형식이 차지한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 이 글은 마니아리포트( http://www.maniareport.com/openshop/myreport/new_news_view.php?idx=2376 ) 에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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