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대로, 내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산국화이어도 좋고 나리꽃이어도 좋은 것이다.
아니, 달맞이꽃이면 또 어떤가!
느즈막히 도종환 시인의 글들에 매료된 것 또한 인연이라 생각해 본다. 조금, 아니 많이 늦어서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 지금이라도 그의 아름다운 시와 따뜻한 산문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을 살면서도 사람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그의 넉넉한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라는 따뜻한 제목을 지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하나같이 겸허하고 따뜻하다. 김용택 시인의 표현처럼 이 산문집의 모든 글들은 그 자체로 시다. 한번 읽고 그만인 글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펴서 또 읽으며 그 속에 담긴 시인의 깊은 성찰을 곱씹어 보고 싶어진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욕심내는 사람들이 있다. 강추한다는 얘기에 당장 읽어보겠노라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제목에 반했다며 다 읽게 되면 빌려 달라는 이도 있다. 좋은 책을 함께 보는 것도 분명 좋은 일일 테지만 이 책은 빌려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이 책이 '너무 좋아서'라고 얘기 해야겠다.
늘 곁에 두고 마음에 먼지가 낄 때마다 읽어야 할 것 같고 제목 자체가 하나의 가르침과도 같은 예순 세편의 주옥같은 글들을 마음에 새겨두고 싶기 때문이다. 김용택 시인은 좋은 글 보다 좋은 사람을 좋아한다 했다. 좋은 사람의 글을 읽어 보면 글재주 글 냄새보다 사람 냄새가 솔솔 배어 나와 사람을 취하게 한다고 했는데 나에게도 도종환 시인의 글이 그러했다.
아마도 진실이 서려 있어서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은은한 사람의 향기를 흘리는 좋은 사람이어서 일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 속을 크게 울렸던 그 무언가를 짤막한 글로나마 표현해 보고 싶었는데 그럴 재주가 내겐 없다. 그저 누군가에게 "정말 좋다."는 짧은 말로 읽어 보기를 권하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드러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모두 특별한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특별한 사랑은 특별한 사람을 만나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보통의 사람을 만나 그를 특별히 사랑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 어머니의 동백꽃
나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의 무엇으로 있을까.
그에게 물이 되어 스미고 있는 걸까. - 사랑의 불, 바람, 물, 흙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사랑한다고 말한 그 사람도 없고 사랑도 없다.
분명히 둘이 서로 뜨겁게 사랑했는데 그 뜨겁던 사랑은 간 데가 없다. - 시드는 꽃을 어떻게 멈춰 세울 수 있는가
그대가 거기 있는 것처럼 소박한 모습으로 서서 자기들이 있는 곳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어 놓고 있는 이들이 세상에는 참 많습니다. - 그대 거기 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내가 별을 바라보고 있는 이 각도의 반대편
꼭지점에 그대가 있을 것임을 나는 안다.
그대가 어디 있는 지 알고 있는 별은
우리를 그렇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연결해 주고 있을 것이다. -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게 아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음으로 해서 모든 물줄기가 그곳으로
모이고 거기 모여서 시냇물이 되어 먼바다에까지
흘러가는 이치를 배우고 싶다.
다시 맑고 차가운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 가장 추운 곳에 서 있고 싶은 날
강줄기 위에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꽃잎처럼 띄워놓고
천천히 따라 내려가고 싶다.
그 말을 해본 지가 언제인지 너무도 오래된
사랑한다는 말을 강물 소리 곁에서 다시 하고 싶다. - 나는 다시 강으로 가고 싶다
고요히 있는 것이 최선이다.
가만히 있으면 흐린 것은 아래로 가고 물은 맑아진다.
맑아지면 마음의 본바탕과 만나게 된다.
맑아지면 선해지고 선해지면 욕심도 삿됨도 가라앉게 된다. - 고요히 있으면 물은 맑아진다
물이 맑아서 산 그림자를 깊게 안고 있고,
산이 높아서 물을 늘 깊고 푸르게 만들어 주듯이
그렇게 함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강물에 띄우는 편지
내 목소리를 듣기만 하고도 내 가슴속에 비가 내리고 있는지
먹구름이 몰려 오고 있는지 금방 알아채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 노랫소리를 듣고는 내가 아파하고 있는지 흥겨워하고 있는지
금방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친구다
그를 대하는 내 마음이 그늘져 있으면
나를 향한 그의 마음도 어둡다.
내 얼굴이 남의 얼굴에 물에 비치듯 비친다.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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