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에게 있어 우암 송시열이라는 인물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3천번 이상 언급될 정도로 조선 후기 이후 지금까지도 우리 역사상 가장 치열한 논란의 대상이라는 그는 과연 그 수사에 어울릴만큼 극단적인 찬사나 저주를 받았던 적이 있었으며, 또 그를 지금 또다시 재조명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것이 진보적 역사학자라 일컬어지는 이덕일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라는 책을 읽고 난 후의 솔직한 느낌이다. 나 역시도 역사에 관심이 많기도 했거니와 올해 초에 읽었던 함성호의 '철학으로 읽는 옛집' 탓에 송시열과 그의 정적 윤증의 옛집을 찾아 직접 여행을 다녀오기도 할만큼 송시열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랬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됐고 '노론의 300년'에 대해 유독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보게 됐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자 여러 화제작을 통해 젊은이들이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게 만든 장본인이자 편향된 역사의식을 지닌 재야사학가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이덕일 소장은 책의 서문에서 그의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 글은 이런 의문에 대한 필자 자신의 추적이며 나름의 해답이다. 한 가지 밝혀둘 것은 송시열은 내게 호오(好惡)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의 탐구 대상일 뿐이라는 점이다. 송시여로가 그가 이끌었던 한 시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그를 통해 현 시대를 바라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지 그에 대한 극단적 찬사나 비난이 목적은 아니다." - 20쪽. 서문 중에서
이 글은 다분히 그간의 행적에 대한 일부의 비난을 의식한 것이 아니었나 여겨진다. 개인적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냄으로써 송시열과 그가 이끌었던 노론의 시대를 논하고자 했지만 솔직히 얘기하자면 "한국사의 최대 금기", "한 인간을 둘러싼 300년 신화의 가면 벗기기' 같은 표현도 물론 저자 자신의 의지는 분명 아니었겠지만 그것에서부터 벌써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들어 불편한 생각이 든다.
물론 우암 송시열이라는 인물이 우리 역사에서, 특히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을 거쳐 조선 중기 이후의 거친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그는 이덕일의 표현대로 우리의 공식적 역사상 가장 큰 관심과 논란을 일으켰으며 또한 국왕과 맞설 수 있을만큼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었던 최대 당파의 수장이기도 했다.
또한 예송논쟁과 이로 인해 격화된 당쟁으로 촉발된 불행했던 조선의 정치현실에서 그가 보여줬던 편협함과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우리 역사가 겪어야 했던 비극의 책임에서 그가 벗어날 수 없음도 당연하다. 하지만 많은 유학자들이 그 과정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을 벌인 것이 비단 송시열 혹은 노론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까지 다른 당파를 철저히 권력에서 배제시키고자 했던 것은 남인과 소론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이 책을 읽고나니 비단 우암 송시열 개인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조선왕조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잉태된 역사의 비극이 아쉽게 느껴질 따름이다. 친명사대라는 국제 질서에 지나치게 몰입함으로써 민족적 주체성을 상실한 데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판단에도 눈이 어두웠던 탓에 두차례의 호란을 겪으며 국가적 치욕과 민초들의 고통을 불러온 집권층의 문약함을 탓할 수 밖에 없다.
또다른 하나는 주자학이라는 좁은 틀에 얽매여 학문 자체가 교조주의적으로 흘러가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유학의 편협함은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고착화되는 면이 있어 보여서 안타깝다. 세상 그 어떤 학문보다 고차원적이어서 현시대에도 충분한 연구 가치가 있는 유학이 우리나라에서는 예학이라는 이름으로 사대부들의 지배제체 강화를 위한 들러리로 전락해 버린 것 역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충분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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