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책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너무나 많이 알려진 이야기라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머나먼 나라의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현실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살아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또 나처럼 그저 신화의 단편들만 드문드문 알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구석구석에서 많은 사진들과 그림이 신화의 내용들을 이해하기 쉽게 도움을 준다. 신화에 걸맞는 상상력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마냥 허황된 이야기로 느껴질 수도 있는 수많은 신들과, 신이 되고 싶었던 영웅들이 그림 속에서, 조각 속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하는 것을 보면 깊고 풍성한 유럽 문화의 마르지 않는 샘이 바로 신화였던 것이다.
비단 그리스 로마 신화가 유럽에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가 인도의 간다라 지방에 진출해 그리스와 인도 문화가 융화되어 탄생한 그 유명한 '간다라 양식'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의 불교 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간다라 불상 속의 부처님 모습이 서양 사람의 느낌을 풍기는 것은 다 여기서 연유된 바가 크다 하겠다.
애시당초 초기 불교는 불상 제작이 활발하지 못하였는데 조각이 발달했던 그리스 문화가 인도에 전해지지 못했더라면 지금까지 남아 찬란한 아름다움을 후세에 전해주고 있는 수많은 불상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다음에 절을 찾게 되면 사자 가죽을 쓴 금강 역사의 모습을 찬찬히 지켜볼 일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수많은 신들의 이름은 마냥 헷갈리기만 하다. 신들의 가계도 역시 너무 복잡하게 느껴진다. 나 역시도 벌써 나이가 많이 들어 버린 탓인가 보다. 저자의 설명처럼 어른이 되면서 인류의 어린 시절을 기억에 찍어버리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통해 현대 문명과 문화의 뿌리인 신화의 세계에 한발짝 다가서게 됐다. 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상징과 은유를 온전히 다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른이 되면서 내던져버린 '어렸을 때의 것들'을 다시 되살리는 노력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하늘의 무지개를 보며 여전히 설렐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하면서.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설렌다.
나 어렸을 때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
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하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건대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에 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가득 차기를. - 어즈워스의 시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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