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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by 푸른가람 2012.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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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다닐 적에 증산도 관련 책을 본 적이 있었다. 정확한 제목과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한(환)단고기나 규원사화를 근거로 단군신화 이전 우리 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서술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렸을 적 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역사 교과서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기에는 모자람이 많았었다.

수천년 동안 그 세월만큼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았으면서도 자주성을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유일한 단일민족국가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 과거 우리 역사에 대한 학계의 자평이었으며 자긍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어야 했던 이 말이 불행히도 기성세대의 우리 역사 인식의 수준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한편 안타깝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역사의 아픔도 물론 있다.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자주성을 잃지 않았던 우리는 조선시대 들어 성리학적 세계관에 몰입된 나머지 대국인 중국을 섬기고 스스로를 소중화로 여기는 것으로 자존을 삼았다. 사대주의 사관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우리 고대사는 일제 강점기의 식민사관으로 결국 치명타를 입고 제자리를 잃고 말았던 것이다.

내가 배워왔던 학창시절의 국사가 그러했고 고시나 각종 수험서로 각광받고 있는 기존 역사학자들의 저술 역시 기존의 틀에서 큭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대학 때 읽었던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이나 그 이후에 보았던 변태섭의 한국사통론 역시 그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인 면에서 우리 고대사의 강역을 한반도의 좁은 강역으로부터 확장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수없이 계속되었던 일본의 역사 왜곡에 이어 중국까지 동북공정이란 이름으로 역사 왜곡의 대열에 합류한 이후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내에서 자주적인 시각으로 우리 고대사를 재인식하고자 하는 노력이 하나둘씩 결실을 맺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아직은 기성 역사학계의 이단이자 비주류에 불과한 그들의 노력이 왜곡되고 과소평가되었던 우리의 과거를 바로잡는 주춧돌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이덕일 소장이다. 그동안 한국사의 여러 쟁점들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통해 역사를 대중 속으로 이끌었던 그가 이번에는 우리 역사의 시원인 고조선을 이야기의 마당으로 끌어 내 놓았다.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는 제목만으로도 이 책을 통해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논지를 눈치채고도 남음이 있다.

수수께끼같은 고조선의 실체를 알기 위해 세 명의 역사학자는 고조선의 옛 땅을 직접 찾아가 우리가 알고 있던 고조선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에 대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한편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일까, 왜 이런 내용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던 것일까 하는 아쉬움도 커진다. 

우리 국사 교과서에 단군조선은 없으며, 일제 식민사관이 단군사관을 부정하고 고조선의 강역을 한반도로 축소시킨 것은 중국 동북공정 논리와 묘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조선은 수많은 제후국을 거느린 황제국이었으며 그 강역은 현재 중국 북경의 바로 위쪽부터 만주와 시베리아를 아우를 정도였고, 고조선의 철기 및 청동기 기술 또한 중국 한나라보다 훨씬 앞선 것이었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학창시절에 열심히 외웠던 한사군의 위치가 그동안 알려졌던 한반도가 아니라 사실은 현재의 중국 요서지역이었다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불러 일으킨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심어주지는 못할 망정 확실한 역사적 고증없이 고대사의 시원에서부터 외세의 식민지였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던 역사학자들은 마땅히 반성해야 할 노릇이다. 

과거의 진실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그것이 수천년전의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역사는 간혹 신화와 전설, 혹은 야화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불행히도 우리의 역사서들은 수많은 전란을 통해 사라져버렸다. 우리 역사를 우리 손으로 현세에 전하지 못해 중국이나 일본에 남겨진 사서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유추해야 함은 역사의 비극이다.

또한 수많은 역사의 쟁점들을 그들의 기록과 시각을 앞세워 정설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역사의 올바른 인식방법이 결코 아닐 것이다. 과연 사마천의 사기나 삼국지, 일본서기에는 역사적 진실만이 기록되어 있다고 믿는 것인가. 어차피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뿐이며 그 속에서도 수많은 왜곡과 편견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역사라는 이름의 허구와 왜곡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일,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인 것이다.

식민사관과 중화주의로 인해 왜곡되고 뒤틀린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모순들. 우리 역사에 덧씌워진 이념의 장막들을 이제는 말끔히 걷어내야 한다. 우리 민족의 뿌리와 올바른 정체성, 더 나아가 세계 속에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아록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사학계의 입장 차이로 굳어진 통설이나 그릇된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우리 역사를 재점검해야 한다. 이는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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