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여행작가 최갑수는 '잘 지내나요 내 인생' 이후 신작 소식이 없다. 전혀 새로울 것 없는 개정판에 실망을 하면서도 또 내 취향에 그만큼 잘 맞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 늘 기다리게 된다. 지금의 나처럼 누군가 나의 글과 사진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참 행복하고 좋을 것 같다.
여러 종류의 책을 읽어보려고 하고는 있지만 여행 에세이가 그래도 제일 편하고 또 끌린다. 긴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 아름다운 우리 땅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고, 그것들을 담은 사진이 있는 책은 언제 읽어도 좋다. 뭔가 읽을만한 새 책이 있나 싶어 찾아보다 발견한 것이 바로 '여정'이란 책이다.
이상민이라는 작가는 내게 생소하다. 경북 영덕의 강구에서 태어났고 스킨스쿠버를 하면서 시를 썼던 독특한 경력을 지난 여행작가인 듯 하다. 지금은 공연전문지에서 문학과 고전음악, 공연과 전시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고 하니 참 다재다능한 사람인 것 같아 부러운 생각이 든다. 물론 그의 과거가 그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음은 그의 글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길이 빛난다
밤마다 세상의 모든 길들이 불을 끄고 잠들지 않는 것은
길을 따라 떠난 것들이 그 길을 따라
꼭 한번은 돌아오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통해서, 사진을 통해서 그 사람을 읽을 수가 있다. 그 속에 그 사람의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또 다가올 미래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작가의 표현대로 인간이란 존재가 '길을 걷는 존재'라고 말한다면 앞을 향해 걸을 때가 있고, 또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때가 있는 법이다. 작가에게도 그런 시간이 찾아온 것이고, 지금의 내게도 그런 시간이 찾아왔음을 느낀다.
다른 사람의 글과 사진을 통해 그 사람을 읽어보듯 이제는 나를 읽어보는 시간도 필요한 때가 온 것 같다. 다시 돌아올 것을 알면서 떠나는 이 길의 끝이 어디로 향할 지 나 역시 알 수가 없다. 나 역시도 작가의 바람처럼 내가 걷게 될 길이 어떤 길이든 발바닥 둘엔 대지의 기운이 솟아오르고 창공의 바람이 머리를 가르고 있는 순간을 느꼈음 좋겠다.
이 책을 다 읽는데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 3년간 월간 <토마토>에 연재되었던 글을 묶은 이 책의 각각의 글들은 독립적이다. 처음에 나오는 계룡산 사진을 보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지난 봄 홀로 걸었던 계룡산 계곡의 신록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진 한장만으로도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다.
얼골 하나야
손가락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 정지용의 호수
굳이 나누어 보자면 이 책은 최갑수 스타일이기 보다는,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을 떠올리게 한다. 디테일하게 파고들기 보다는 우리땅 구석구석에 자리한 고을들의 전체적인 느낌이 옅게 드리워져 있다. 표현 역시 직설적이기 보다는 비유적이다. 또한 그의 느낌을 온전히 잘 이해하자면 고전음악이나 문학에도 조금은 일가견이 있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각자의 여정이 언제,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끝이 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정표도 없고 결말도 알 수 없기에 두려운 길이 될 수 밖에 없겠지만, 한편 그래서 희망과 호기심을 가지고 걸어갈 용기를 내는 건 지도 모르겠다. 그 여정의 마지막 기록이 좀더 풍요로울 수 있게 오늘 하루를 또 열심히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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