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암 촘스키(Noam Chomsky). "미국의 양심"이라 불리며 거대한 지배권력에 맞서 진실을 외쳐온 촘스키를 책으로나마 뒤늦게 만나게 된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MIT의 교수로, 언어학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그가 학문 분야가 아닌 현실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경고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레 풀리게 된다.
꽤나 오래 전부터 세계적인 명성과 영향력을 지닌 그가 우리나라에 알려지게 된 것이 2001년의 9.11 테러 사건 이후라고 한다.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세력의 음모를 알리는 데에, 그리고 그러한 음모에 순진한 대중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해 일생을 보낸 촘스키가 아니었던가.
"나는 지난 세월 미국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촘스키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세계 지배에 대한 음모와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테러와 범죄들을 고발하여 왔다.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의 영향력이 지대한 우리 현실에서 그의 존재가 또한 불편했음도 지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미국을 세계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여기고 배워왔던 사람들에게 촘스키의 글들은 심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미 한가지 색에 진한 물이 들어 있다면 불편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미국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테러를 통해 미국의 불편한 진실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촘스키가 우리 사회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진실은 신문기사나 뉴스 저 너머에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유력한 일간지의 기사나 방송사의 뉴스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려 한다. 하지만 보여지는 그것들은 결코 진실이 아니다. 딱 거기까지만 알고 있는, 혹은 거기까지만 알려주고 싶은 존재에 의해 생산된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촘스키는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지금의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불만도 커 보인다. 사회가 자유로워질수록 무력을 사용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지배권력은 선전을 이용하게 되고, 지식인이 이 작업에 동원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수천 년 전부터 그랬지만, 지식인의 역할은 민중을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며 무지한 존재, 결국 프로그램된 존재로 만드는 데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촘스키에게 있어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여러 한계로 인해 진실에 접근하기 어려운 일반 대중에게 그 어떤 것도 가감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책은 정치, 경제, 언론 등 여러 분야의 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경제에 관한 촘스키의 생각만 떼놓고 보자면 장하준 교수의 입장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을 해보게 된다. 시민의 권한을 개인기업에 양도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이고, 세계화는 기업계와 산업계가 만들어낸 창작품이며, 이제는 거대 기업이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 등도 지금의 우리 현실을 비추어 봤을 때 결코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 될 이야기인 것이다.
그가 하고 있는 이야기가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바람처럼 촘스키의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면 정치계와 사회집단이 감추고 있는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도전의식을 키우면서 스스로 알아내려 한다면, 그동안 세상을 지배해왔던 거짓과 위선이 발붙일 자리도 그만큼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너무 많은 것이 담겨진 탓에 손쉽게 하나로 풀어내기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많은 이야기들이 책에 담겨져 있지만 각 Chapter의 제목만으로도 촘스키가 얘기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은 그 제목들을 소개하며 세상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촘스키와의 대화를 끝맺고자 한다.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진실은 진실된 행동에 의해서만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 - 톨스토이
나는 포리송 사건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말했을 뿐이다
자유란, 어떠한 환경이나 속박 그리고 어떠한 기회에도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다. - 세네카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힘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있는 권력은 때로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 코슈트
자본주의는 없다
큰 재물에는 반드시 큰 불평등이 따른다. 한 사람의 부자가 있으려면 오백 명의 가난한 사람이 필요하다. - 애덤 스미스
보이지 않는 세력이 경제를 지배한다
장사꾼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그들은 이익을 얻는 것 외에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는다. - 제퍼슨
이제는 거대 기업이 권력의 중심이다
富는 온갖 범죄를 감싸주는 외투다. - 메난드로스
현실의 민주주의는 가짜다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칸트
언론과 지식인은 '조작된 동의'의 배달부다
양심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것 가운데 유일하게 매수되지 않는 것이다. - 필딩
나는 미국이 지난 세월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다
전쟁은 언제나 악인보다는 선량한 사람만을 학살한다. - 소포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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