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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우주의 참된 모습이 해인삼매의 깨달음으로 - 해인사

by 푸른가람 2023.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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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法), 팔만대장경을 모셔놓고 있는 법보종찰(法寶宗刹)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불보사찰 양산 통도사, 이름난 명승을 많이 배출한 승보사찰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로 불린다. 명산(名山) 가야산을 뒤로 하고 매화산을 앞에 둔 명당(明堂) 자리에 터 잡고 있어 웅장한 소나무 숲과 고요한 산사가 한데 어우러져 경이롭고 신비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팔만대장경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해인사를 찾는 발걸음이 더 늘어났다.

해인사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기도 하다.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3년(802)에 화엄종의 초조(初祖) 의상대사의 뜻을 이어받아 화엄십찰의 하나로 세워졌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에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해인사 이름이 여기에서 연유했다. 

해인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法), 팔만대장경을 모셔놓은 법보종찰(法寶宗刹)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불보사찰 양산 통도사, 뛰어난 명승을 많이 배출한 승보사찰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로 불린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중생들의 번뇌와 망상을 뜻하는 거친 파도가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치는 경지를 말한다. 이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우리 중생의 본디 모습이라고 해인삼매는 우리에게 깨달음을 전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국 31본산 중 하나였으며 지금은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서 172개의 말사와 16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해인사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 불교의 성지이며 세계문화유산을 비롯한 국보급 문화재들의 보고(寶庫)다.

성보박물관 앞 주차장에서 1km 남짓 산길을 걸어 해인사에 오른다. 물론 차가 다닐 수 있는 길도 있어 수월하게 해인사에 당도할 수도 있겠지만, 산사를 제대로 즐기려면 잠깐 동안의 수고를 감수하며 숲길을 따라 걷는 것이 좋다. 

워낙 이름난 사찰이다 보니 해인사 가는 길에도 큰 기대를 품었었는데 조금 실망스러웠다.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시멘트로 포장을 해놓은 탓에 흙길을 걷는 맛을 느끼기 어렵다. 지척으로 자동차들이 분주히 오르내려 적막과 고요가 감싸고 있는 산사의 모습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부도탑을 지나 일주문에 들어서니 탁 트인 기분이 든다. 그리 울창하진 않지만 시원스런 전나무숲이 도열하듯 서서 절을 찾는 이들을 반겨준다. 이제야 비로소 절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주문에 걸려 있는 현판의 필체가 시원스럽다. 

해인사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은 언제나 정겹다.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푸른 기상이 상쾌하다. 그 오랜 세월을 늘 그 자리에 서서 이 길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았을 이 나무들에게서 삶을 배워본다. 한참을 응시하고 있자니 이름난 고승대덕보다 말없는 생명들이 더 숭고(崇高)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나 자신이 한그루 작은 아기나무가 되는 순간이다.

해인사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는 전나무숲길은 언제나 정겹다.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푸른 기상이 상쾌하다. 그 오랜 세월을 늘 그 자리에 서서 이 길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았을 이 나무들에게서 삶을 배워본다. 한참을 응시하고 있자니 이름난 고승대덕보다 말없는 생명들이 더 숭고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특이하게도 해인사 천왕문에는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벽화가 양면에 그려져 있다. 해인사 경내에 들어서면 왼편으로 보이는 것이 해인도라는 것인데, 법성계를 외면서 합장하고 길을 따라 돌면 사후에 업(業)이 소멸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로(迷路) 같은 길을 따라 돌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여 나도 따라 돌아봤다. 사후의 업이 말끔하게 사라질 수 있다면 좋겠다.

높다란 계단 위에 세워진 대적광전의 모습이 위엄을 드러낸다. 해인사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어 대적광전이 중심법당이다. 함께 봉안된 문수보살상·보현보살상과 더불어 비로자나불 삼존상으로 불린다. 본래 성주군 금당사(金塘寺)에 있었으나 용기사(龍起寺)로 옮겨졌다가 1897년 현재의 위치에 봉안되었다.

대적광전 뒤 높은 자리에 장경각이 우뚝 서 있다. 장경각은 고려대장경판을 봉안해 둔 2개의 판전으로 법보사찰 해인사를 대표하는 건물이다. 경판을 안전하게 오래도록 보관하기 위해 과학적 기법을 총동원해 만든 한국건축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장경각 문에 햇빛이 비치면 그림자가 지는데 그 모양이 마치 연꽃이 피어나는 듯하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그 안에 소장된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은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장경각 안에 모셔져 있는 팔만대장경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아쉽지만 후세에 길이 물려줄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면 마땅히 따라야 할 일이다. 좁은 틈 사이로 팔만대장경의 실체를 친견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때마침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사찰 경내에는 형형색색의 연등이 걸려 있다. 불교 신자들에게는 5월의 신록이 산을 타고 오르고, 연등이 바람에 흔들리며 제각각의 색이 마치 점으로 아로새겨지는 이때가 절을 찾기에 가장 좋은 때가 아닌가 싶다. 무심히 지나는 바람 소리, 계곡의 세찬 물소리에도 불심이 가득 차 있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평일이라서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덕분에 사람들의 말소리도 이따금씩 울리는 풍경 소리에 묻히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서늘한 그늘이 지는 구석에 앉아 바람에 땀을 식히거나 풍경 소리에 마음을 씻고 있는 듯 보였다. 그네들의 모습이 그렇게 평화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일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사람들이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연등으로 환히 밝혀진 산사의 밤을 거닐고 싶다. 부처님 오신 날 무렵의 번잡함은 싫지만, 지혜(智慧)의 밝은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모습이 바로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어둠은 해가 저문 산중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어리석은 욕심으로 눈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탁(濁)해지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지독한 어둠인 것 일 수 있다. 그 어둠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욕심이런가.

해인사를 끝으로 비로소 우리나라 삼보사찰 기행을 마칠 수 있어서 기분이 뿌듯하다. 어쩌면 숙제하는 기분으로 해인사를 찾았던 것 같다. 그때를 다시 떠올려보니 이름난 팔만대장경 보다는 일주문을 지나 만났던 전나무숲길이 생각난다. 다음에는 이 길을 좀 더 여유롭게 걸어봐야겠다.

해인사를 여러 번 다니면서도 소리길의 존재는 잘 알지 못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정말 그 말이 천고의 진리인 것 같다. 차로 해인사 입구 홍류동 계곡을 지날 때마다 시원스러운 계곡을 따라 걸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다들 비슷한 가 보다.

가야산이 천년의 시간 너머 숨겨 놓은 마지막 절경, 홍류동 계곡이 ‘가야산 소리(蘇利)길’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생태탐방로로 재탄생했다. 최치원 선생의 전설이 곳곳에 남아 있는 이 길은 2011년 9월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 개막과 함께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 대장경 축전장에서 시작해 무릉교와 농산정을 거쳐 해인사 영산교에 이르는 6km 코스다.

가야산이 천년의 시간 너머 숨겨놓은 마지막 절경, 홍류동 계곡이 가야산 소리길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생태탐방로로 재탄생했다. 소리길이라는 이름은 우주 만물이 소통하고 자연이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이며,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등 계곡을 걸으며 다채로운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5월의 신록이 하루하루 세상 빛깔을 바꿔주고 있는 요즘도 참 좋지만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이면 더욱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할 것 같다. 소리길이라는 이름은 우주 만물이 소통하고 자연이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이며,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등 계곡을 걸으며 다채로운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저마다 이 길을 걸으며 듣게 될 소리는 다를 것이지만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을 듯싶다.

특히 홍류문에서 영산교에 이르는 3.1km 코스는 걷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숲은 온통 하늘을 가려 시원스러운 그늘을 만들어 주고, 바로 옆을 흐르는 상쾌한 계곡의 맑은 물소리는 한여름에도 더위를 느낄 수 없다. 경사가 거의 없이 평탄하게 길이 만들어져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자연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는 것도 참 좋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최치원 선생이 속세를 떠나 바둑과 차를 벗 삼아 숨어 살다 신선(神仙)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농산정과 학사당 등의 수많은 유적을 만나게 된다. 가야 19명소 가운데 소리길에 16개의 명소가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다. 좋은 벗과 함께 옛 이야기를 따라 걷노라면 어느새 길의 끝에 당도해 있으리라. 논두렁을 끼고 도는 들길로 시작해 숲을 따라 난 오솔길, 아름드리 소나무로 우거진 숲길까지 소리길의 풍경은 다양하다. 풍광 좋은 곳에는 전망대를 설치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마냥 좋을 수만도,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제 길이 만들어졌으니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동안은 사람의 출입이 없어 아름다운 자연 생태계가 온전하게 잘 보존되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명품 숲길로 만들어 가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길에 어울리는 깊고 청명한 소리로 이 길이 가득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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