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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섬진강과 십리벚꽃길을 품고 있는 고즈넉한 산사 - 쌍계사

by 푸른가람 2023.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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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 땅의 이름난 고찰 쌍계사는 이전부터 찾고 싶던 곳이었다. 지난봄에는 지척까지 갔다가 벚꽃놀이 인파에 쫓겨 다시 차를 돌려야 했던 기억도 있다. 유명한 하동 십리벚꽃길의 끄트머리에 쌍계사가 자리 잡고 있다. 십리벚꽃길은 화개 장터에서 시작해 화개천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져 쌍계사까지 5km에 걸쳐 이어진다. 흰 눈의 융단폭격을 맞은 양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터널은 섬진강을 대표하는 봄 풍경이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지리산 자락에 있는 쌍계사는 조계종 제13교구 본사다. 관장하고 있는 말사가 무려 43개, 암자도 4개에 달할 정도로 큰 절이다. 쌍계사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리산이 큰 산은 큰 산인 모양이다. 지리산 자락이 품고 있는 쌍계사, 화엄사, 연곡사, 천은사, 내원사 등 이름난 절만 해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니까 말이다.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 천왕문을 통과하는 것이 사찰의 정통적인 배치 형태이긴 하지만 쌍계사처럼 세 개의 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는 절은 흔히 보기 어렵다. 작은 개울을 다리로 건너면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은 계단으로 이어지며 금당영역에 가까워진다.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리산의 눈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선종(禪宗) 육조 혜능 스님의 초상화를 봉안(奉安)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이곳에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신비로운 마음마저 든다. 절의 원래 이름은 옥천사였었는데 이후 신라 정강왕이 진감선사 혜소의 높은 도량과 법력을 기려 쌍계사란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쌍계사는 차(茶) 재배지로도 유명한데, 840년에 진감국사가 당나라에서 차의 종자를 심고 대가람을 중창한 역사가 있다. 이런 연유로 쌍계사 입구 근처에 ‘차시배추원비’, ‘해동다성진감선사추앙비’, ‘차시배지’ 기념비가 있다. 신라 흥덕왕 3년(828) 김대렴이라는 사람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지리산 자락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 보급한 것이 차와 얽힌 쌍계사의 인연이다.

쌍계사 구층석탑은 고산 스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삼과와 산내 국자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이과와 전단나무 일위를 모셨다. 전체적인 느낌이 월정사의 8각9층석탑을 많이 닮아 있어 절을 찾는 사람들이 흥미롭게 바라본다.

쌍계사에 이르는 숲길도 참 풍성하니 좋다. 산중의 고찰들이 좋은 것은 이처럼 좋은 숲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부처님께 절을 하고 무언가를 간절히 기도하지 않아도 상쾌하고 싱그러운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의 때가 지워지는 듯하다. 부디 이 아름다운 산사의 숲길들이 앞으로도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어주면 좋겠다.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 천왕문을 통과하는 것이 사찰의 정통적인 배치 형태이긴 하지만 쌍계사처럼 세 개의 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는 절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조금은 어그러지게 이어지기도 하고, 숲길의 형태대로 구불구불하게 연결되거나 한두 개의 문이 생략된 경우도 많은데 쌍계사에서는 정통의 권위가 느껴진다.

세 개의 문을 지나는 사이 제각각의 멋을 지닌 숲들이 우리를 반겨 준다. 사철 푸른 대숲에는 청량한 가을바람이 불어주고 있었고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는 자신을 닮으라 무언의 가르침을 주는 듯하다. 단풍나무 잎들은 하나둘씩 붉게 물들어 간다. 작은 개울을 다리로 건너면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은 계단으로 이어지며 금당 영역에 가까워진다.

천왕문을 지나면 정면에 팔영루가 있고 그 앞에 우뚝 솟은 돌탑 하나가 산사를 찾는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탑을 한 바퀴 돌며 요모조모 살펴보기도 하고 탑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이도 많다. 모양을 보아보서는 지어진 지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높지 않지만 월정사 8각9층석탑을 닮아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대목이다. 좀 더 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쌓이고 나면 쌍계사의 또 다른 볼거리로 사랑받을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범패(梵唄)를 만든 불교음악의 발상지이자 교육장이었다는 팔영루를 지나면 쌍계사의 유일한 국보인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 제47호)가 계단 한가운데서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계단과 약간 어긋나게 자리 잡고 있다. 말끔하게 잘 정돈된 계단과 오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대공탑비가 조금은 이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진감선사 대공탑비는 신라 말기의 고승인 진감선사 혜모 스님을 숭모(崇慕)하여 만든 것인데 최치원이 비문과 글을 썼다. 신라 말기의 학자 최치원이 지은 비문 가운데 신라의 불교사를 비롯하여 한문학사·사상사 등 여러 면으로 자료적 가치가 높은 네 편의 비문을 일컫는 사산비명(四山碑銘) 중 하나로 유명하다. 붓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살려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당대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문인이었으나 시대를 잘못 타고났던 불운했던 천재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산사 여행이 될 수 있겠다. 

쌍계사 대웅전에 오르는 계단 한가운데서 이 절의 유일한 국보인 진감선사 대공탑비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진감선사 대공탑비는 신라 말기의 고승인 혜모 스님을 숭모하여 만든 것인데 최치원이 비문과 글을 썼다. 붓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살려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진감선사는 불교음악인 범패(梵唄)를 도입하여 대중화시킨 인물로도 유명하다. 범패는 불가에서 재(齋)를 올리거나 중요한 의식을 치를 때 사용된 음악이다. 가곡, 판소리와 함께 3대 성악곡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흔히 우리나라의 범패가 진감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전의 역사 기록에 범패가 나오는 것을 볼 때 진감선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쌍계사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이때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널리 퍼졌다고 보는 편이 보다 정확한 해석일 것 같다. 높이 3.6미터에 불과한 작은 비 하나에도 이렇게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니 유구한 역사의 무게가 절로 느껴진다. 이런 연유로 쌍계사는 선(禪), 차(茶), 음(音)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영광을 안았다.

진감선사 대공탑비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석가모니 부처를 모시고 있는 중심법당 대웅전이 나타난다. 정면 다섯 칸 측면 세 칸짜리 팔작지붕 건물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인조 때 중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체적으로 기둥의 높이가 높아 규모가 웅장하고 장쾌하게 느껴진다.

쌍계사의 본전인 대웅전 왼편에 나한전이 자리 잡고 있다. 나한전은 인간 세계의 온갖 번뇌를 끊고 이치를 깨달아 부처의 경지에 오른 열여섯 나한을 모신 곳이다. 명부전과 나란히 마주보고 있다. 조계종 본사답게 많은 당우들을 거느리고 있는 쌍계사지만 내게는 유독 나한전이 눈에 들어온다. 대웅전에 비하면 규모도 한참 작고 소박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오래된 느낌이 맘에 든다. 맞배지붕이라 그런지 더욱 고졸(古拙)한 느낌이다. 그래서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첨성각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나한전의 담장이 무척 아름다워 쌍계사에 갈 때면 늘 이곳에서 한참을 머무르게 된다. 기왓장을 쌓아 올리고 틈새는 누른 황토를 발랐다. 담장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낙산사 원통보전이나 도동서원의 담장 못지않다.

첨성각과 경계를 이루는 나한전의 담장 또한 무척 아름답다. 기왓장을 쌓아 올리고 틈새는 누른 황토를 발랐다. 담장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양양 낙산사 원통보전이나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의 담장 못지않다. 나지막한 담장에 예쁜 꽃잎이 수줍게 피어나 단아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가을의 전령사로 불리는 코스모스는 쌍계사 제일 깊은 곳에 벌써 피어났다. 붉디붉은 강렬한 색감이 깊어가는 가을을 제대로 표현해 주는 것 같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쌍계사를 내려오는 길에 만난 단야식당 앞의 노란 은행나무도 인상적이다. 법정 스님이 쌍계사에 오시면 즐겨 드셨다는 밥집이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 식당의 밥맛을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예약객이 많아 빈자리가 없다니 돌아서는 발걸음이 더욱 아쉬웠다. 다시 쌍계사를 찾을 때면 잊지 않고 찾아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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