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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공 하나에 웃고 울었다 - 삼성 vs SK 7차전 리뷰

by 푸른가람 201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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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공 하나가 승부를 갈랐다. 5회말 투아웃을 잡아놓고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한 정현욱이 만루 위기를 자초하자 덕아웃에서 노심초사하던 류중일 감독이 결국 투수 교체 카드를 빼들었다. 차우찬과 함께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던 이우선이 마운드에 올랐고 타석에는 SK 4번 타자 이호준이 배트를 곧추 세우고 있었다.

참 애매한 상황이었다. 4년만에 선발투수 보직을 받고 마운드에 오른 정현욱이 여러차례 실점 위기를 넘기며 승리투수 조건에 아웃 카운트 하나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두 타자를 범타로 잘 처리한 정현욱의 투구수는 이미 한계 투구수에 다다르고 있었다. 제 아무리 정현욱의 내구성이 좋다고는 해도 불펜에서 뛰다 선발투수로서 5회 이상을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마지막 한 고비만 잘 넘기면 선수 개인도, 팀에게도 좋은 일이었겠지만 투구수가 80개를 넘어가면서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빠른 공의 위력도 이전같지 않았고 변화구 제구도 마음먹은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2사후에 정근우와 임훈에게 안타, 최정에게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허용하며 결국 위기를 키웠고 류중일 감독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다.

삼성 코칭스태프의 선택은 이우선 카드였다. 타석에 나올 이호준을 상대로 우완투수 이우선을 올린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구위에서 차우찬이 한수 위라고 해도 그 상황에서 '좌타자에 좌투수, 우타자에 우투수'라는 야구계의 오랜 관행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투수 교체를 두고 류중일 감독에게만 비난을 퍼붓다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마운드에 오른 이우선 역시 엄청난 부담을 안고 등판했을 것이 분명하다.


1:0으로 근근히 리드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2사 만루에 상대 4번타자와 상대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한순간의 선택에 따른 결과 치고는 너무 황당하면서도 한편 처참했다. 모든 이의 시선이 쏠렸던 초구는 어이없게도 폭투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정식 포수는 원바운드 공을 필사적으로 블로킹 했지만 3루주자가 홈을 밟는 것을 막기는 어려웠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다소 아쉽기는 해도 동점 상황으로 잘 막아만 줬더라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을텐데 당황한 이정식의 송구가 다시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2루주자까지 홈을 밟으며 순식간에 승부가 역전되고 말았다. 팽팽하던 승부의 긴장감이 일순간에 허트러지는 순간이었다. 초구 폭투에 자신감을 잃은 탓에 이우선의 두번째 공은 가운데 높은 쪽으로 몰렸고 이호준의 배트는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좌측 담장을 훌쩍 넘기는 투런 홈런이 터져 나왔고 이것으로 오늘 승부는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단 오늘 한경기 승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추스리는 것이 급선무다. 4년만에 선발투수로 등판해 눈 앞에서 승리를 날려버린 정현욱이나, 누구나 부담스러워 할 상황에서 등판해 공 2개 때문에 천추의 역적 신세가 되어버린 이우선 모두 마음이 편치 않은 밤을 보낼 수 밖에 없게 됐다. 투수 교체 시기를 놓고 코칭스태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선도 따갑다.

물론 자신이 위기를 자초한 면이 크고 덕아웃에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회를 줬다고 볼 수 있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차라리 정현욱에게 5회까지를 맡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선수들이 결과를 납득할 수 있도록 경기 운영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선수 개인의 승리 보다는 팀을 앞세울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는 하지만 오늘 경기는 어찌됐건 둘 다를 잃어버린 꼴이 되고 말았기 때문에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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