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책벌레 스물아홉명의 열렬한 책에 대한 사랑과 예찬이 여기에 담겨 있다. 공부벌레, 일벌레, 책벌레..재미있는 단어의 조합이다. 나는 분명 감히 책벌레의 범주에 속하지는 못하지만, 그리고 책벌레까지 되고 싶진 않지만 보다 많은 좋은 책들을 읽고, 갖고 싶은 욕망은 크다.
어린 시절부터 책읽는 것을 좋아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집에 그리 책이 많지는 않았고, 도서관을 찾아가서까지 책을 파고들만한 열정과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어느 곳이든 근처에 책이 있으면 펴 들고 보는 걸 좋아했었고, 큰 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값비싼 가구나 전자제품 보다는 책이 가득한 집을 부러워 했었다. 물론 지적 허영을 채워주기 위한 장식용 책은 말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 읽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어느 통계를 보면 우리 국민의 20%(어떤 통계에서는 40%라고도 한다)는 1년에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틀린 통계치는 아닌 것 같다. 주위를 둘러봐도 시간날 때 책을 보고 있는 사람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나 역시도 지금처럼 꾸준히 관심있는 책을 찾아보고, 사서 읽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그저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꾸준히 습관처럼 읽게 된 것은 어떤 사람 덕분이다. 많은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을 통해서 나도 자연스레 닮아가게 된 것 같다. 29명의 책벌레 가운데에서 특히 '끌림'의 작가, 이병률 시인의 책사랑이 끌렸던 데에도 다 이런 것에서 공감이 갔던 탓일 것이다.
평생 가슴에 품은 책 한 권이면 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든든한 밑천이 된다. 충분하다. 나를 흔들어 놓은 책, 나를 버티게 해주는 책. 그래서 남에게 자신있게 이야기하고 또 권할 수 있는 책, 그러나 그 일은 쉽지 않은 일이며,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당신'을 만난 것과 맞먹는 일일 것이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한 시절 누구를 만났는가, 어떤 책을 가슴에 품은 사람인지에 따라 사람의 뒷면 혹은 밑면에 누구도 지우지 못할 뭔가가 새겨지게 마련이다. 그 '새겨짐'만으로도 진수성찬을 담을 자격은 충분하다.
그렇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평생에 이 책 한권을 만난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것은, 평생에 그런 단 한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이 마치 기적같은 일임이 분명하다. 이병률 시인은 "문제는 단 한권이다. 그 책 한권과 맺는 인연이다."고 했다. 그 운명같은 단 한권을 만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도 또 달라질 것이다.
피아니스트 이루마도 책을 꽤 좋아하나 보다. 그가 특별한 인연으로 좋아하는 책 한권으로 '연어'라는 책을 소개하고 있다. 이루마가 '연어'라는 책에 담겨진 이야기를 더 아름답고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었던 것에도 다 사람의 따뜻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책은 책 자체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사람들이 함께여서 더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는 것일 거다.
<연어>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연어만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서 그래도 아직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보석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것이겠죠. 난생 처음 본 사람에게도 따뜻한 친절을 베풀어준 그 형처럼요.
남은 인생에 꿈꾸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어느 고요한 풍경이 있는 곳에 작은 집을 한채 짓는 일이다. 이왕이면 풍경 속에 녹아들 수 있는 우리 전통의 건축이면 좋겠다. 그 속을 좋은 책으로 가득 채우는 일도 그 꿈 가운데 하나다. 그 곳에서는 언제나 담백한 차 향기가, 때로는 따뜻한 책과 사람의 향기가 가득찼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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