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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인생의 낮잠 - 사진, 여행, 삶의 또 다른 시선

by 푸른가람 2012.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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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이란 단어는 자연스레 여유로움과 나른함을 불러오는 듯 하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부채질 속에 무더위를 잊을 수 있었던 낮잠의 기억이나 지독스럽게도 더웠던 1994년 여름 강원도에서 보냈던 군대시절의 꿈처럼 달콤했던 오침시간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여름 무더위 보다 몇배는 더할 인생에도 이런 달콤한 낮잠을 한숨 자줘야 하지 않을까.

'인생의 낮잠'은 두번째 읽게 되는 후지와라 신야의 에세이다. 얼마 전에 <돌아서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란 책을 읽고 난 느낌이 너무 좋아서 다시 그의 책을 찾아보게 되었다. 이 책은 일본의 대표적인 전문 여행가이자 사진작가인 후지와라 신야가 CREA라는 일본 여성지에 연재했던 여행과 사진에 관한 서른여섯 편의 글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 펴 낸 것이다.


사진, 여행, 삶의 또 다른 시선이라는 부제와 딱 어울리는 표지 사진을 접하게 된다. 묘한 착시를 일으키게 만드는 사진이다. 머리 부분이 보이지 않는 개 한마리가 바닥에 누워 있고 바로 옆에는 마치 그 개의 머리처럼 보이는 것이 놓여 있다. 처음 보았을 때 섬뜩함을 느끼게 했던 이 사진은 책 전체를 펴서 보면 비로소 온전한 전체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잘려진 사진 왼편으로는 나른함에 겨운 듯한 개의 얼굴이 특히 도드라져 보인다. 후지와라 신야가 여행한 곳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들어했던 발리섬에서 만난 개는 일년 내내 여름이어서 성격마저 느슨해진 탓에 멍한 모습이다. 그 옆에 친한 친구처럼 누워 함께 낮잠을 즐기는 돼지의 모습은 여행자의 천국 발리에 참 잘 어울리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일본, 발리, 그리고 유럽을 오가는 그의 여정을 담은 글과 사진 속에서 인생의 낮잠과 같은 위로를 얻기를 바랐던 내 기대는 아쉽게도 성에 차지 못했다. 분명 이야기의 소재는 더욱 풍성해지고 문장은 더욱 수려해진 느낌이지만 <돌아서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를 읽으면서 맛보았던, 삶을 바라보는 따뜻함과 깊었던 그 무엇은 아쉽게도 조금 옅어진 듯 하다.

철저히 현실에 발을 붙인 그의 글과 사진들은 활어처럼 펄떡인다. 허공을 맴돌지 않는다. 세상의 위선을 가차 없이 벗겨 내고, 갈기갈기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한다. 죽음에 대한 성찰조차 가슴 두근거리도록 아름답다. 퍼올리고 퍼올려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문장, 문장들. 후지와라 신야를 내 인생의 구루로 받들기로 한 이유다. 라고 모 기자는 극찬했지만 그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한 듯 해서 그마저도 덧없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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