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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

by 푸른가람 2012.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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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권 '인생도처유상수'를 처음으로, 거꾸로 시작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느지막히 읽어보기도 이제 거의 막바지에 도달했다. 앞서 읽었던 세권의 책들도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3권에 담겨 있는 우리 땅 구석구석의 문화재들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들이었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경주나 수없이 많이 접했던 안동 등 경북 북부지역의 문화재들에서는 정겨움과 반가움마저 진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가장 아쉬웠던 것은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우는 서산 마애삼존불을 아직 보지 못했던 것이다. 서산 마애삼존불의 부처님들은 보통의 불상에서 느껴지는 근엄한 절대자의 모습 보다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이다. 삼불 김원용 선생은 그 아름다움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거대한 화강암 위에 양각된 이 삼존불은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말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인간미 넘치는 미소를 띠고 있다. 본존불의 둥글고 넓은 얼굴의 만족스런 미소는 마음좋은 친구가 옛 친구를 보고 기뻐하는 것 같고, 그 오른쪽 보살상의 미소도 형용할 수 없이 인간적이다. 나는 이러한 미소를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기를 제창한다."

지난해 봄에 충청도 일대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당초 다른 것은 못 보더라도 서산 마애삼존불은 꼭 보고 와야겠다고 마음먹고 떠난 여행이었는데 무엇에 쫓겼던 지 그냥 스쳐 지나왔던 것이 이제 와 생각하니 두고두고 아쉽게 느껴진다. 만약 내가 삼존불을 보게 된다면 나 역시 그 옛날 선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침묵의 찬사를 이 명작에 보내게 될까 궁금해진다.


안동 사람에게서는 특별한 뭔가가 느껴진다. 유홍준 교수가 말했던 것처럼 그것이 그들이 지켜온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에서 연유한 것이든, 아니면 답답하게 느껴질 지도 모를 고루한 고집인 것인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그것이 무엇이든 안동 사람이 지켜 온 그들의 땅과 문화는 분명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재빠르게 변해가는 요즘 세상에서 이렇게나마 그들의 오래된 역사를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온, 그리고 이 시간에도 지독하게 고수해가고 있는 안동 양반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안동, 의성, 영양, 봉화지역의 문화재들은 대부분 직접 보아온 것들이지만 책을 통해 모르던 것들을 새로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니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된 말인데, 무척이나 공감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분명 알고 있었던 것들이었지만, 전에 모르던 사실을 새로 알고 바라보는 문화재들은 분명 그전과는 다르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봉정사와 병산서원도 소개되어 있다. 특히나 병산서원은 언제나 마음속에 두고 그리워하는 곳이기도 해서 책을 읽을 때도 그 마음이 각별했다. 지금은 오를 수 없는 병산사원 만대루의 모습은 한편 안타까움을 준다. 넓직한 만대루 누각에 앉아 말없이 흘러가는 낙동강 물줄기를 바라보며 고요함에 빠져들던 그 옛날이 이젠 모두 추억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이십 년 이상을 살았던 경주는 지금도 내겐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조지훈 시인이 작사한 나의 모교 교가에도 나오는 이 '마음의 고향'이란 말이야 말로 경주가 우리 문화와 역사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여실히 드러내는 말이 아닐까 싶다.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재라면 역시 불국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게 불국사는 절이라기 보다는 관광지의 이미지가 강해서 매번 갈 때마다 불편했던 적이 많았다. 이번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불국사에 대한 오해는 좀더 깊어졌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오해가 불국사가 지닌 문화재적 가치를 그동안 평가절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니 미안한 마음도 든다.

유홍준 교수 역시 경주 불국사가 전문가로부터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건축을 논하기 위해선 반드시 사찰건축을 거론해야 하고, 그 중 뛰어난 절집이라면 당연히 영주 부석사, 순천 선암사, 경주 불국사가 손꼽힌다고 얘기하고 있다.

불국사는 산자락을 타고 올라앉았으면서도 비탈을 평지로 환원해 돌축대의 기교와 가람 배치의 묘가 압권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수없이 불국사를 돌아 다녔으면서도 단 한번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돌축대의 아름다움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또 어쩌면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내가 몰랐던 것이 이뿐만은 아니었다. 불국사가 일제시대부터 제3공화국에 이르는 기간 동안 엄청난 수난을 당했음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지금껏 불국사 경내를 무심코 돌아다녔던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해체복원과정에서 깨진 석가탑, 깨어진 사리병은 물론이고 복원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원형을 많이 훼손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또 얼마만큼의 세월이 흘러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안목이 좀더 커진다면 불국사의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되찾는 날이 올 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청운교와 백운교 아래에 있던, 동서 39.5m, 남북 25.5m에 이르던 타원형 연못인 구품연지가 복원돼서 범영루가 달빛속에 비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3권의 부제를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라고 부쳤다. 김원용 교수가 고고학을 두고 '죽은 사람들과의 대화'라고 했던 것을 두고 유홍준 교수는 자신의 전공인 미술사를 그렇게 표현했다.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새해에는 내 마음이 좀더 깊어져서 말하지 않는 것과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표현하지 않는 사람의 속마음까지도 잘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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