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 바람이 한차례 지나간 지 오래다. 불필요한 것들을 비어내고 삶을 단순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요즘 트렌드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런 사조가 처음엔 신선하게 느껴져 자발적인 행동의 변화를 유도했다면 지금은 일종의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수많은 책과 유명강사의 특강 등이 우리에게 단순한 삶을 강요하는 듯 하다. 중요한 것은 무작정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만 가지고 주변을 단순하게 잘 정리하면서 사는 게 아닐런지.
미니멀라이프 또한 다양한 여러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이것이 정답인 것처럼 강요하는 것은 지나치다. 나 역시도 미니멀라이프의 취지에 깊이 공감한 사람이라 시간날 때마다 책상 서랍을 정리하고 책장에 꽃혀있기만 한 책들을 치우고, 쓰임새가 없어진 것들을 버리곤 한다. 종이책을 사기 보다는 전자책 대여를 통해 독서의 습관을 유지하는 것 또한 내 나름의 미니멀라이프 실천방식인 것이다.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빈자리를 또 무언가가 금새 채워버린다는 점이다.
얼마전에 전자도서관의 책들을 살펴보다 흥미로운 책 한권을 골랐다. 탁진현 대표의 <가장 단순한 것의 힘>을 선택한 것은 우선 단순한 디자인에 눈이 끌렸던 것이 큰 이유인 것 같다. 제목 역시 심플하면서도 구미를 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이 책의 특징은 HOME, OFFICE, MIND의 세 항목으로 분류하긴 했지만 미니멀워크, 특별히 일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탁진현 대표는 단순함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연구소 이름이 이채롭다. 단순함을 연구하는 곳이라니.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니 강의 프로그램 운영, 잡지나 교재, 카달로그 등의 제작도 하고 있다. 이곳의 단순함이란 세련된 심플함으로 뜻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기업과 관공서를 위한 책자 제작이라 아쉽다. 출판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취약한 분야인 표지나 지면 디자인에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미니멀리즘은 나같은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삶의 방식이다.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혹은 그런 쓰임새 조차 없더라도 과거의 추억이 담겨 있어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다보면 불필요한 물건들로 공간이 채워져 정작 중요한 것들이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
지내보면 안다. 지금 당장 필요 없는 것들은 그 언젠가가 되더라도 마찬가지다. 혹시라도 필요가 있다고 한들, 지극히 낮은 확률에 기대어 제한된 공간을 내어주는 건 엄청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뻔히 잘 알고 있음에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아야말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라며 매번 반성하지만 타고난 천성이 쉽사리 바뀌지는 않는다. 그래서 눈에 띄는대로 이런 책을 읽는다. 단순하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반성하고 새롭게 바뀌려는 시도를 다시금 해보게 된다.
물론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당장 내 삶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과거에도 단순한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책들은 많이 읽었었다. 그나마 그런 책들의 도움으로 조금이나마 내 주변이 정리가 된 것일수도 있겠다만. 미니멀라이프를 가르치는 책들의 내용은 다들 비슷하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가장 단순한 것의 힘>은 일의 방식에 그 방점이 찍혀져 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우리 삶에 있어서 일을 빼놓고 얘기할 순 없다. 직장인의 경우 눈 뜨고 있는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낸다. 그렇다면 단순한 삶을 실천하기 위해선 사무실의 환경과 직장에서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만 한다. 그것이 일상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일을 잘하는 노하우이기도 하다. 내게 특히 다가온 부분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책을 버려야 성장한다는 대목이다.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디자인이 이쁜 책을 모으는 데도 관심이 많다 보니 책장 가득 책들이 꽃혀 있다. 고백하건데 인테리어와 자기 만족의 방편에 불과한 것이지만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책에 대한 집착을 끊기가 무척 어렵다. 이따금씩 필요없는 것들을 일제정리하기도 하지만 어느새 또 빈자리가 채워져 있다.
어떻게 바꿔야 할까. 탁진현 대표는 책을 삼(buy)에서 책을 삶(life)로 전환하라고 얘기한다.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보관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 책의 내용을 일상에서 실천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자아느냐이다. 책에 집착하는 이유가 단지 지식욕이라면 비워냄이 옳다는 지적이다. 소유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책을 통해 내 삶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것이중요하다.
일의 방식보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을 버리다는 주제에 관심이 갔다. 누구나 잘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미국의 은퇴 전문가 어니 J. 젤린스키는 저서 <느리게 사는 즐거움>에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퍼센트는 절대 일어나지않을 것들에 대한 것이고,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퍼센트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것이고, 4퍼센트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이다. 나머지 고작 4퍼센트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다. 그러나 4퍼센트의 일들에 대해 걱정하는 것 역시 쓸데없는 일이긴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일을 제어할 수 있으니 말이다."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우리가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불필요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신체와 감정의 에너지만을 소모시키는 걱정에서 해방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을 충만하게 하는 급선무이다.
너무 많이 생각하는 습관 또한 마찬가지다. 좋은 아이디어가 갑작스레 머릿 속에서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재빨리 메모를 하든지 하고는 바로 잊어버려야 하는데 또 그것이 쉽지가 않다. 여기에서 온갖 생각들이 연이어 줄줄이 비엔나처럼 실타래가 되어 나온다.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온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는 생각들은 대부분 불필요한 잡념과 걱정일 때가 많다. 이럴 때 생각을 끊어내는 좋은 방법을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제일 먼저 방을 정리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구를 개어넣고 바닥을 쓸면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깨끗하게 비워진 방처럼 머릿속도 정리된 느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 일의 능률이 오른다는 이야기다. 실제로도 방 정리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세계 최정상 인물들의 성공 노하우를 조사한 <타이탄의 도구>라는 책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들은 하루의 첫 30분이 이후의 12시간을 결정한다고 한다. 잠자리를 정리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루의 첫 과업을 달성한다는 뜻이고 이것이 이 날의 다른 과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은 당연해 보인다.
두 번째로 명상을 권하고 있다. 명상의 효과는 과학적으로도 입증이 됐다고 한다. 오랫동안 명상을 해온 사람들의 대뇌 MRI를 촬영한 결과 대뇌피질이 보통 사람들보다 두꺼운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대뇌피질이 발달하면 감정조정 능력이 향상되고, 명상 상태에서는 뇌파가 평소의 베타파에서 알파파로 바뀌는데 사람들은 이 상태에서 창의력과 집중력을 극대화한다고 한다. 명상은 분주하게 일을 하다가도 가능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은 걷기 명상이라고 추천한다.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걷기에 집중함으로써 잡념들을 떨쳐낼 수도 있으니 이보다 좋은 마음 다스리는 방법이 또 있을까.
세 번째 방법은 몸을 바쁘게 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노동에 집중함으로써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뇌를 쉬게 하려면 단순하게 몸 쓰는 일을 해줘야 하는데 일상적으로 하는 설거지나 빨래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빌 게이츠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설거지 담당을 자처했다고 하니 그동안 간간이 했던 설거지를 아예 전담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사찰에서 스님들이 '울력'을 통해 몸을 고되게 하는 것 또한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편이다.
지은이는 책의 말미에서 40일 미니멀워크 실천 프로젝트 리스트를 만들어 독자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도와주고 있다. HOME ①미니멀하우스 만들기 ②새는 돈 줄이기 ③가볍게 살기, OFFICE ④미니멀오피스 만들기 ⑤잡일 최소화하기 ⑥덜 중요한 일 버리기, MIND ⑦사람 스트레스 줄이기 ⑧생각 버리기 ⑨중요한 것만 남기기 등이다.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았다. 새로운 마음으로 리스트로 체계회된 40일간의 미니멀워크를 실천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시도일 수 있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에 있다. 머릿 속으로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고, 계획을 꾀한다한들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어떠한 변화도 생길 수 없는 법이니까. 책상을 정리하고 자고 난 이불을 개고, 집 근처를 산책해보는 것들은 지금 당장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우선 게으름에 익숙해진 몸을 움직여보자. 내가 움직이면 세상이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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