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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의 耽溺

마음에만 담아야 했던 회룡포의 일출

by 푸른가람 2011.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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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맘먹고 떠났던 새벽 회룡포였습니다. 게으름 탓에 제대로 된 일출을 본 것이 지금껏 몇번 되질 않습니다. 황금빛 가을 들판을 배경으로 붉게 타오르는 회룡포의 일출은 가히 환상적이지 않을까 기대를 품었지요. 새벽부터 서둘렀지만 회룡포 주차장은 이미 차 댈 곳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필이면 날을 잘못 잡은 겁니다. 어느 동호회에서 출사를 나온 모양입니다. 회룡포 전망대 주변으로 좋은 포인트는 이미 진사들에게 선점된 상태였습니다. 다들 든든한 삼각대에 값비싼 카메라로 일출 사냥에 나선 모습이었습니다. 겨우 똑딱이 하나 들고 떠난 제가 설 자리는 전혀 없더군요.


저 역시 사진을 시작할 때는 저런 모습이었습니다. 동호회 회원 수십여명과 단체 출사를 다니며 의도치 않았던 '사진 찍는 유세'를 그리도 해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번잡함과 꼴불견이 싫어 지금이야 주로 혼자 다니곤 하지만 이른바 사진 명소를 갈 때마다 마주치게 되는 모습들은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곤 합니다.

사진은 무엇으로 찍는 것일까요. 물론 카메라로 찍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피사체를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가짐과 사진을 찍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라 할 겁니다. 누군가 사진으로 남기는 것 보다 그 순간을 마음에 담아두는 게 더 낫다는 얘길 저한테 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진을 오래 찍을수록 어쩌면 그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비록 사진으로 남은 건 볼품 없는 몇 장 뿐입니다. 늘 보아오던 회룡포 사진은 그다지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날 일출시간에 맞추려고 숨가뿌게 회룡대를 향해 오르며 맞았던 일출의 순간만은 아름다웠습니다. 그 찰라의 순간과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아 두었으니 또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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