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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남의 집 불구경? 이해 못할 클린스만의 미소

by 푸른가람 2024.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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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카타르 아시안컵 E조 예선 최종전에서 말레이시아에 무기력한 경기 끝에 무승부를 기록한 축구 국가대표팀을 두고 비판 여론이 거세다. 그도 그럴 것이 FIFA 랭킹 등 객관적 전력만 놓고보면 애초에 두 팀은 상대가 되질 못한다. 대한민국은 FIFA 랭킹 23위인데 비해 말레이시아는 무려 130위에 머물러 있다. 양팀간의 예선 최종전을 앞두고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대한민국의 낙승을 예상했던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우선 FIFA 랭킹 자체가 각 국의 축구 수준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지표라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FIFA랭킹을 산정하는 지표는 명확하다. FIFA에서는 2018년 8월부터 미국 물리학자인 아르파드 엘로(Arpad Elo)가 합리적 실력 평가를 위해 창안한 엘로 레이팅 시스템(Elo rating system)을 기반으로 순위를 매기고 있는데 실력이 좋은 상대를 이길 경우 많은 포인트를 얻게 되고, 실력이 낮은 상대에게 패할 경우 많은 포인트가 깎이는 방식이다. 이 기준에 따라 높은 점수를 받는대로 랭킹이 부여된다. 

아무리 실력과 수준이 높다고 한들 FIFA에서 설정해 놓은 기준에 따른 포인트를 획득하지 못하면 그 나라의 순위는 자연스럽게 하위권으로 처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말레이시아의 FIFA랭킹이 130위라고 해서 그들의 축구 실력 자체가 세계 하위권이라고 보는 것은 오산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FIFA랭킹이 높은 바레인(86위)과 요르단(87위)에 말레이시아가 완패를 당한 것을 보면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지나친 과신은 금물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대한민국과 말레이시아가 A매치에서 맞대결을 펼칠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과거 1980년대 이전만 해도 한국은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과 매우 빈번하게 국가대표 경기를 가졌었는데 맞대결 결과는만족스럽지 못했다. 말레이시아 김판곤 감독의 역할 또는 가볍지 않아 보인다. 인도네시아 역시 신치용 감독을 사령탑으로 앉혔고, 베트남 또한  최근까지 박항서 감독을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맡겨 역대 최고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 출신 지도자의 동남아시아 진출은 앞으로 대한민국 대표팀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맞대결에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말레이시아전에서 보여준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력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다. 쉬운 상대로 여겼지만 막상 두껑을 열어보니 만만치 않았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만큼 벤치의 전술 없이도 충분히 낙승을 거둘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면 벤치의 명백한 오판이다. 볼 점유율은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상대를 위협할만한 날카로운 공격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상대의 역습에 수비진은 흔들렸고, 말레이시아는 무시무시한 ‘원샷원킬’의 위력를 여실히 드러냈다.

 

답답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의 눈에 의아한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경기를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클린스만 감독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이었고 간혹 웃음 짓는 모습도 보였다. 대한민국의 16강 상대인 F조 1위 사우디 아라비아 만치니 감독의 눈에도 이 장면은 의아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언론 인터뷰에서 만치니 감독은 말레이시아전 3-3 동점골 허용 이후 한국대표팀 클린스만 감독이 웃음 짓는 장면을 자신도 보았다며 “이상한 일이지만, 축구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일본과의 16강전을 내심 두려워했던 클린스만 감독이 어려운 상대을 피한 것에 내심 만족감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하고 있기도 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인 것은 확실하다. 만족스럽지 못한 국가대표팀의 경기력과 예선 최종전 경기 결과에 실망했을 국민들의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그가 생각하는 대한민국 축구의 정체성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과 축구팬들이 이번 아시안컵에 거는 기대와 관심을 느끼고 있다면 그러한 반응을 보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무척 실망스럽다.

 

경기 패배 후 인터뷰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박진감 넘치는 경기였다. 여섯 골이 터졌고, 한 골은 말레이시아의 ‘극장골’이었다.”고 얘기했다. 황당하기 그지 없는 발언이었다.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그의 태도에 클린스만 감독이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16강전에 대비한 비책을 준비해 두었을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을 내놓는 이도 있지만 큰 기대는 접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 수 아래의 상대들과의 예선전에서 대부분의 주전을 풀타임으로 뛰게 한데다 옐로우 카드를 받은 선수들만도 부지기수다. 차라리 이번 아시안컵에서 충격적인 패배로 조기 탈락하는 편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좋은 결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취미생활로 국대 감독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클린스만 감독과의 동행이 길어질수록 한국 축구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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