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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안녕 다정한 사람 - 그래서 그곳이 그대가 그립다

by 푸른가람 2013.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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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여전히 이병률스럽고, 내노라하는 10명이 쓴 글 또한 그들답다. 2012년 11월에 출간된 <안녕 다정한 사람>이란 책은 은희경, 김훈, 신경숙, 백영옥, 이병률 등 이름만으로도 독자들을 압도하는 글쟁이들은 물론 박칼린, 이명세, 장기하, 박찬일, 이적 등 끼와 재능이 넘치는 예술쟁이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며 남긴 여행의 기록들이다.

'여행'이란 단어는 언제나 날 흔들어 깨우는 치명적인 유혹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은 그 시간대로, 여행지에서의 순간 순간은 또 그나름대로, 여행을 마치고 되돌아 온 후의 추억은 또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사실 의미가 없는 시간이란 것이 있을까. 그저 사람들이 그 시간들을 어제와 같은 오늘로 방치해 두지만 않는다면 나름의 독특한 의미로 누군가의 삶에 쌓여 화석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겐 화사한 꽃으로 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병률. 그 남자가 부럽다. 열 명이 여행을 떠나는 프로젝트에 모두 동행하고, 그들의 짧은 일상 속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는 않으니까. 깊이가 느껴지는 그의 글, 건조한 듯 하면서도 독특한 감성이 느껴지는 그의 사진을 보며 하늘은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소설가 은희경은 와인이라는 애인에 흠뻑 취하러 호주에 갔다. 영화감독 이명세는 콰이강의 다리에 올라 새로운 영화를 디자인 했다. 시인 이병률은 12월의 핀란드를 찾았고, 소설가 백영옥은 중경삼림의 배경 홍콩에서 열아홉 살의 꿈을 맛보았다고 했다. 이렇듯 열 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행선지를 찾아 지구별을 누볐고 그 여정은 이병률의 사진 속에 담겨 이렇듯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해외를 나가 본 것이라곤 의도치 않았던 중국 여행이 유일한 지라 아직까지도 해외 여행기에 대해선 끌리는 맛이 덜하다. 물론 단 한번도 접해 보지 못한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은 있지만, 아직도 난 언제든 마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우리땅의 숨겨진 보물들에 더 끌린다. 그것 또한 여행의 재미라고 할 지 모르지만 이름 모를 외국의 공항에서 기약없는 밤을 지새거나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고생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래도 이 책에 소개된 열 곳의 여행지들은 은근 매력적이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나만의 해외여행 일정을 미리 짜두는 것도 재미날 것 같다. 벌써 머릿 속 상상의 나래가 한없이 펴져 저 먼 캐나다의 어느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는, 밤 하늘을 수놓은 오로라가 선보이는 빛의 향연에 흠뻑 젖어 있는 나를 멀찍이서 바라본다. 나에게 여행이란 도대체 뭘까?


은희경에게 여행은 '낯선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탄력의 게임'

이명세에게 여행은 책상을 걷어차고 이미지 만들기

이병률에게 여행은 바람, '지금'이라는 애인을 두고 슬쩍 바람피우기

백영옥에게 여행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도돌이표

김훈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

박칼린에게 여행은 물이고, 시원한 생수고, 수도꼭지

박찬일에게 여행은 좋은 친구와 여행을 떠나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

장기하에게 여행은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타게 된 전철 창밖으로 바라본 풍경이 문득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것

신경숙에게 여행은 친숙한 나와 낯선 세계가 합해져서 넓어지는 일

이적에게 여행은 현실을 벗어나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것,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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