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났다. 미술 담당 기자로 일하며 그림 이야기를 해왔던 손철주의 에세이 '꽃 피는 삶에 홀리다'라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림처럼 마치 책 속에 담긴 글에, 그림에, 시에 홀린 기분이다.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다, 그림이다> 등 이전에 나온 그의 책을 미처 읽어보지 못한 아쉬움이 그래서 더 커진다.
이 책은 크게 세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장은 책의 제목과 같은 '꽃 피는 삶에 홀리다', 제2장은 '사람의 향기에 취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은 '봄날의 상사를 누가 말리랴'는 이름을 제각기 달고 있다. 내 개인적 취향으로는 첫 장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일상의 담백한 이야기와 느낌이 담겨있는 것이 좋다.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네
가련하다, 한 해의 봄날이여
오고감이 비바람에 달렸구나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可憐一春事 往來風雨中
선조 때의 문장가 송한필의 오언시에 담긴 정서는 다분히 보편적이다. 덧없이 흘러가는 봄날의 정취에 대한 아쉬움은 감정을 지닌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금새 지고 나는 꽃을 보면서 사람들은 상실감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될 것 같다.
꽃 심으면 안 필까 걱정하고
꽃 피면 또 질까 걱정하네
피고 짐이 모두 시름겨우니
꽃 심는 즐거움 알지 못해라
種花愁未發 花發又愁落 開落摠愁人 未識種花樂
가는 봄을 아쉬워 하는 마음보단 바람에 피고 지는 꽃에 연연하지 말고, 비바람을 탓하지 않는 성숙함을 배워야 하겠다. 고려시대 문인인 이규보의 시에서 그 깊은 뜻을 배워볼까. 꽃은 피고 지는 것이 제 태어난 숙명이요, 우리는 그저 자연의 섭리 속에 피고 지는 꽃을 심고 가꾸고 지켜보는 즐거움을 누리면 그만일 것이다. 어차피 좋은 것 두고 떠나는 게 인생이니까.
그의 박학다식함이 부럽다. 그의 물 흐르듯 유려한 문체와 짐짓 젠 체 하지않는 편안함을 닮았으면 좋겠다. 미술 담당 기자라는 그의 출신답게 그의 책 속에는 아는 만큼 보이는, 보는 만큼 보이는 그림들이 있다. 어차피 우리 사는 세상이 다 그림이라고 한다면 그림에 좀더 집중할 필요가 있겠지만 아직은 보는 눈이, 느끼는 마음이 부족한 가 보다.
내게는 오히려 책 곳곳에 소개되어 있는 시들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어쩌면 이렇게 내가 원하는 옛사람들의 한시를 한자리에 모아 놓았는 지 신기한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은 그래서 꽃 피는 봄에 더 잘 어울릴만할 것 같다. 지은이의 표현처럼 소생하는 봄날의 상사를 감히 누가 말릴까 싶다. 두고두고 시간 날 때마다 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을 만나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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