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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4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둔 분황사 풍경 부처님 오신 날을 며칠 앞두고 분황사를 찾았습니다. 분황사앞 유채꽃밭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볼 요량으로 먼 길을 달려 당도했는데 아쉽게도 꽃은 거의 다 진 상태였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분황사는 한번 보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입장권을 끊고 분황사 경내로 들어섭니다. 때마침 경주시티투어를 온 단체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려 좀 혼잡스럽더군요. 분황사는 지금 남아 있는 절의 규모는 아주 작은 편이지만 그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에 경주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은 꼭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분황사의 위치 역시 바로 앞에 넓은 황룡사지가 있고 시내에서 보문단지로 향하는 길목에 있어 접근성도 아주 좋은 편이기도 하구요. 분황사 경내에도 수많은 연등들이 매달려 있어 알록달록한 빛깔이 파릇파룻 물이 오.. 2011. 5. 10.
구름으로 산문을 지은 청정도량 청량사(淸凉寺) 청량사는 청량산 12봉 가운데 하나인 연화봉 기슭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자리가 불교를 대표하는 꽃인 연꽃의 꽃술자리라고들 한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고승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고려시대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에 의해 중건된 천년고찰이다. 설명에 따르면 창건 당시만 해도 승당 등 무려 33개의 부속건물을 거느린 대사찰이었으며, 봉우리마다 자리잡은 암자에서 울려퍼지는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산 전체를 가득 채웠다고 한다.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했던 까닭에 청량산 일대에만 27개의 크고작은 암자가 있어 신라불교의 요람을 형성했을 정도였으나, 이후 숭유억불책을 썼던 조선시대 이후 쇠락을 거듭해 현재는 청량사와 부속건물인 웅진전만이 남아 있다. 청량사를 대표하는 법당 유리보전.. 2009. 6. 28.
찬란했던 신라불교의 메카 분황사 어린 시절 분황사와는 지척에 살았던지라 내겐 아주 익숙한 절이다. 국민학교때는 그저 여느 놀이터가듯 경내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었다. 분황사 앞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황룡사지 역시 국사 교과서에 나오기 전부터 동네 꼬마들에게는 그저 공터에 불과했던 시절이었다. 분황사는 비록 지금은 작은 규모의 사찰로 전락했지만 유명한 절이다. 창건 연대는 신라 선덕여왕 3년인 서기 634년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학계에 이론은 많다. 경북 경주시 구황동(어릴 적 동네 이름을 오랜만에 들어보니 감회가 새롭다)에 자리잡고 있으며 국보 제30호인 모전석탑 등 많은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는 이름난 사찰이다. 요즘에는 분황사앞 황룡사지 넓은 터에 꽃밭을 조성해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있기도 하다. 분황사의 이름을 두고 여러 논.. 2009. 3. 30.
사명대사 호국성지 밀양 표충사 우포 출사를 마치고 무턱대로 찾아간 곳이 밀양 표충사였다. 이렇다할 사전 정보도 전혀 없었다. 사찰로 들어가는 길가엔 여느 계곡 근처가 그렇듯 팬션과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여름 휴가철이면 도로가 차들로 가득찬다고 했다. 사찰 입구에는 오래된 솔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밀양 표충사는 영남 알프스로 흔히 알려져 있는 재약산과 천황산 초입에 위치해 있다. 신라 무열왕 원년인 654년에 원효대사가 재약산쪽 대나무밭에서 오색서운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사찰을 짓고 절 이름을 죽림사로 하였다고 한다. 조선 현종때(1839년) 월파 천유화상이 임진왜란을 맞아 승병을 일으켜 큰 공훈을 세운 서산, 사명,기허 3대선사를 모신 표충사(表忠祠)를 옮기면서 절 이름도 영정사(靈井寺)에서 표충사(表忠寺)로 바뀌.. 2008.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