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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4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 이덕일 역사서 일반인들에게 있어 우암 송시열이라는 인물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3천번 이상 언급될 정도로 조선 후기 이후 지금까지도 우리 역사상 가장 치열한 논란의 대상이라는 그는 과연 그 수사에 어울릴만큼 극단적인 찬사나 저주를 받았던 적이 있었으며, 또 그를 지금 또다시 재조명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것이 진보적 역사학자라 일컬어지는 이덕일의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라는 책을 읽고 난 후의 솔직한 느낌이다. 나 역시도 역사에 관심이 많기도 했거니와 올해 초에 읽었던 함성호의 '철학으로 읽는 옛집' 탓에 송시열과 그의 정적 윤증의 옛집을 찾아 직접 여행을 다녀오기도 할만큼 송시열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랬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됐고 '노론의 300년'에 .. 2012. 5. 31.
일흔일곱에 지은 우암의 공부방, 남간정사 충청도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로 남간정사를 찾았다. 개인적으로 우암 송시열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진으로 본 남간정사의 실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마치 봄날같았던 햇살 덕분이었는지 다행히도 남간정사의 기억은 따뜻하게 남아 있다. 바위를 흐르는 계류 위에 놓여져 있는 남간정사는 언제가 될 지 모를 첫 건축의 모델이 될 수 있을만큼 매력적이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남간정사와 기국정이 사이좋게 놓여 있고 그 앞에는 연못이 공간의 여백을 채워준다. 그리고 그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이것은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봉래산을 상징하는 우리 전통 조경의 정형이기도 하고, 집이 들어설 자리의 풍광을 중요시하는 기호지방 성리학자들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담장을 따라 한바.. 2012. 3. 12.
우주 만물의 배꼽(omphalos)을 꿈꾼 우암 송시열의 팔괘정 사계 김장생이 말년을 보낸 임이정에서 서북쪽을 바라보면 나즈막한 산자락에 팔괘정이라는 정자가 자리잡고 있다. 팔괘정은 우암 송시열이 그의 스승이었던 김장생과 가까이 있고 싶다는 마음으로 임이정 바로 지척에 지은 정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팔괘정은 임이정과 무척 많이 닮아 있다. 흡사 보면 쌍둥이처럼 보일 정도로 구조적으로 흡사하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형태도 그렇고, 두 칸에 마루를 놓고 나머지 한 칸을 벽으로 막아 온돌을 들인 구조도 임이정과 같다. 어차피 이번 여행이 '철학으로 읽는 옛집'에 소개되어 있는 옛집들을 찾아 나선 여행이니만큼 이번에도 건축가 함성호의 설명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그는 조선의 건축은 사실 똑같다고 얘기하고 있다. 조선의 집은 어떻게 생겼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위.. 2012. 3. 9.
푸른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가 상쾌했던 죽림서원 임이정을 향해 가는 길에 죽림서원이 있다. 죽림서원과 임이정, 팔괘정은 모두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고 마치 한 셋트의 유적공원처럼 잘 정리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죽림서원은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는 아담한 모습이었다. 이 역시도 문화재 보호를 위해 문이 굳게 닫혀 있어 건물 안을 들어가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컸다. 죽림서원은 인조 4년(1626년)에 율곡 이이, 우계 성혼,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방 유생들이 세운 사당이었던 황산사가 그 기원으로 전해진다. 이후 현종 6년(1665년)에 '죽림'이라는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고 이때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을 배향하고, 이후에는 노론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까지 추가 배향하게 되었다. .. 2012.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