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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442

법(法)이 편히 머무는 탈속(脫俗)의 절 - 법주사 법주사는 속리산의 넓은 품속에 있다. 속리산(俗離山)이란 이름 또한 천년고찰에 잘 어울린다. 속세를 떠나서 법(法)이 머물 수 있는 이곳이 바로 법주사인 것이다. 가까이에 큰 길이 새로 뚫리면서 이제는 사람들이 보다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옛날에는 깊은 산중에 있어 쉬 찾기 어려운 곳이었다. 무려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법주사를 다시 찾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방문지 중 하나였었는데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탓인지 어릴 적 다녀왔던 법주사의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았다. 보기 흉하게 시멘트가 발린 거대한 불상의 모습과 팔상전을 배경으로 친구들과 찍었던 기념사진만이 그때를 추억하게 한다. 법주사 일주문에 이르는 울창한 숲길이 시원하니 참 좋다. 정식 명칭은 속리산 세조길인데, 조카의 왕위.. 2023. 2. 7.
800년 넘은 느티나무의 속삭임 - 비암사 산등성이를 따라 논밭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길을 따라 비암사로 간다. 오가는 사람도, 차도 드물어 한적하다. 도깨비라도 튀어나올까 싶은 길에서 우연찮게 도깨비도로를 만난다. 제주도에도, 안동에서 봉화 넘어가는 35번 국도에도 도깨비도로가 있다. 내리막길인데 오르막처럼 보인다. 착시(錯視) 때문이다. 착시의 원인을 두고도 설명이 엇갈린다. 의사들은 ‘뇌의 착각’이라 하고, 지형학자들은 지형지물 때문에 착시가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과학적인 이유 따위야 접어두고서라도 잠깐 재미나고 신비한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비암사를 지척에 두고 작고 예쁜 공원이 하나 있다. 다비숲공원이라 불리는데 한가로이 거닐기에 안성맞춤이다. 갖가지 나무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칠 듯 이어지는 물소리를 따라가면 자.. 2023. 2. 6.
남매탑 이야기를 따라 거닐어보는 갑사 가는 길 - 갑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산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계룡산. 계룡산은 통일신라 때엔 오악 중 서악(西嶽)으로, 고려시대에는 묘향산[上嶽], 지리산[下嶽]과 함께 삼악으로 일컬었다. 주봉인 천황봉에서 연천봉,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닭 볏을 쓴 용을 닮았다 하여 계룡산(鷄龍山)으로 불린다. 조선시대에는 새로운 도읍으로 손꼽히기도 했고 『정감록』에는 피난지의 하나로 적혀 있는데 이를 믿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수많은 신흥종교, 또는 유사종교의 성지가 되기도 했던 사연 많은 산이다.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를 통해 갑사를 처음 만났다. 이라는 이성보의 수필(隨筆)에 남매탑 이야기가 나온다. 대학 1학년 때 친구들과 배낭을 짊어지고 떠났던 계룡산 산행길에서 처음 남매탑을 만났었다. 첫인상은 무거운 엄숙(嚴肅)함과 결.. 2023. 2. 5.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말라 - 마곡사 마곡사는 봄 경치가 수려하다고 해서 붙은 ‘춘마곡’이라는 별칭이 더 유명하다.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 라고들 하는데 내가 찾았던 마곡사나 갑사 모두 봄, 가을을 가리지 않고 사계절 언제나 좋았다. 좋은 것은 어느 때 찾아도 좋은 법이다. 태화산의 나무와 봄꽃들은 연한 물감을 퍼뜨린 듯 봄볕에 생기가 움터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래도 봄날 마곡사의 진경(珍景)에 푹 빠진 사람들은 긴 겨울을 지나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신록이 우거지는 마곡사의 봄에 홀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고들 한다. 절 이름은 법문(法問)을 듣고 경치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골짜기를 가득 메우니, 그 모습이 마치 삼이 서 있는 것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 새로 조성된 넓은 주차장에서 십여 분 정도 느릿느릿 걸으면 절에 당도한다. 울창한 .. 2023. 2. 4.
삼남지방의 4대 명당을 대표하는 명소 - 닭실마을 청암정 거북이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워진 정자 주변에는 연못을 파고, 작은 돌다리를 통해 건널 수 있게 해놓았다. 폭도 좁고 길이도 짧은 돌다리를 건너면 피안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매번 어리석은 생각을 하곤 한다. 봉화 닭실마을은 삼남(경상․전라․충청도)의 4대 명당으로 꼽혔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따르면 봉화 닭실마을, 경주 양동마을, 안동 내앞과 하회마을이 그곳이다. 강릉의 선교장도 천하의 명당자리라고 하는데 터가 좋은 곳에서는 매번 좋은 기운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닭실이란 이름은 풍수지리학상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충재 권벌이 터를 잡고 그의 후손들이 500년 이상이나 지켜오고 있는 것을 보면 명당임이 분명해 보인다. 충재 선생이 터를 잡.. 2023. 2. 3.
구름으로 산문을 지은 청정도량 - 청량사 청량사는 청량산 12봉 가운데 하나인 연화봉 기슭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자리가 불교를 대표하는 꽃인 연꽃의 ‘꽃술 자리’라고 한다. 신라 문무왕 3년(663)에 고승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고려시대 송광사 16국사의 마지막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에 의해 중건된 천년고찰이다. 창건 당시만 해도 승당 등 무려 33개의 부속건물을 거느린 대사찰이었으며, 봉우리마다 자리 잡은 암자에서 울려 퍼지는 스님들의 독경 소리가 산 전체를 가득 채웠다고 한다.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했던 까닭에 청량산 일대에만 27개의 크고 작은 암자가 있어 신라불교의 요람(搖籃)을 형성했을 정도였으나, 이후 숭유억불책을 썼던 조선시대 이후 쇠락(衰落)을 거듭했다. 청량사를 대표하는 법당 유리보전은 창건연대가 오래되고 건축미(建築.. 2023. 2. 2.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부석사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달려 부석사에 도착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해지기 전에 부석사의 고즈넉함을 즐기려다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운이 좋으면 태백준령(太白峻嶺) 너머 떠오르는 붉은 일출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무심한 빗줄기는 도무지 잦아들 줄을 모른다. 매년 결심을 하곤 한다. 올가을엔 노랗게 물든 부석사의 은행나무 길을 꼭 걸어보리라. 그러나 매번 또 이렇게 때를 놓치고 만다. 은행잎들은 이미 나뭇가지를 떠나 길 위에 소복하게 쌓여 있다. 겨울을 저만치 앞둔 계절에 나뭇잎들도 자신을 치열하게 불태우고는 태어났던 땅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부석사는 비와 안개에 갇혀 있다. 짙은 안개로 시야를 허용치 않더니 어느 순간 하늘이, 산이 열리기 시.. 2023. 2. 1.
따사로운 가을 햇살 같았던 절 - 쌍봉사 전라도 화순에 왔다. 화순(和順)이라는 고을 이름처럼 화순 땅은 부드럽고 순하다. 쌍봉사는 ‘천불천탑의 절’ 운주사와 더불어 화순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일정에 쫓겨 지나쳐야만 했던 몇 해 전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쌍봉사는 무척이나 작은 절이다. 번잡한 도회지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덕분에 조용하고 한적한 산사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 선암사와 송광사라는 큰 절을 다녀온 직후여서 그런 느낌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수백 수천의 신도와 관광객이 운집하는 절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넉넉함과 여유라고나 할까.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절 구석구석에 내려앉아 한가로이 경내를 노니는 사람들을 보듬어 주는 듯하다. 쌍봉사는 전남 화순면 이양면 증리 계당산에 자리 잡고 .. 2023. 1. 31.
보고 싶은 내 마음이 다녀간 줄 알아라 - 운주사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 정호승, 굳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천불천탑(千佛千塔)의 절’ 운주사를 다시 찾은 것도 가을이었다. 어느 때라도 나쁘지 않겠지만 구름이 머무는 절, 운주사는 가을이 제격일 것 같다. 이 절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돌아서는 발걸음이 아쉽고, 매번 다음을 기약하게 만든다. 와불(臥佛)의 품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고, 애틋한 그리움은 풍경에 달아 둔다. 운주사를 처음 찾았던 것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어느 가을날 오후였다.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었고, 운주사 위에 머물러 있는 하얀 구름이 절 이름과 참 잘 어울린다.. 2023. 1. 30.
오래된 사대부집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절 - 청암사 김천에 있는 작은 절이라고 지인에게 청암사를 소개했다 아차 싶었다. 수많은 말사를 거느린 조계종 본사는 아니지만, 청암사 자체는 결코 규모가 작은 절이 아니다. 대웅전, 진영각, 육화료, 정법루, 극락전, 보광전 등 당우만 해도 여러 채요, 입구에서부터 경내에까지 시원스런 계곡을 낀 숲길이 한참이나 이어진다. 왜 청암사를 떠올리면서 ‘작은 절’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절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청암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도량(道場)이다. 그래서인지 당우들의 모습도 결코 위압스럽지가 않고 부드럽고 포근하다. 잘 정돈되고 정갈한 아기자기함이 그런 착각을 불러온 게 아닐까 혼자 결론을 내려 봤다. 청암사가 좋은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몇 해 전 어느 봄날에 마치 운.. 2023. 1. 29.
물소리, 새소리가 어우러져 더욱 싱그러운 숲길 - 기림사 경주 시내에서 감포나 양북 쪽 바닷가로 향하는 국도로 가다보면 기림사나 골굴사로 가는 삼거리를 만난다. 이 길을 따라 쭉 가다보면 가파른 재를 넘어 오어사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포항 시내에 진입할 수 있다. 이 길로도 여러 번 다녀서 절이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정작 한 걸음만 움직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인데도 며칠 전에야 겨우 큰맘 먹고 기림사를 다녀올 수 있었다. 기림사라는 이름은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수행했던 승원 중에서 첫 손에 꼽히는 기원정사의 숲을 기림이라 하는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기원정사는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 23번의 하안거(夏安居)를 보내신 곳이라고도 한다. 왜 기림사인가 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다 그런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다.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로.. 2023. 1. 28.
구품연지에 비치는 석탑의 아름다움에 홀리다 - 불국사 불국사는 경북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조계종 제11교구 본사다. 토함산은 경주 남산과 더불어 찬란했던 신라 불교문화의 성지(聖地)였다. 날씨가 쾌청한 날에 토함산 정상에 오르면 푸른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1995년 12월에 토함산 중턱의 암자 석굴암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확한 창건 시기를 두고는 논란이 있다. 신라 법흥왕 15년(528)에 법흥왕의 모친인 영제부인이 새 사찰을 짓고 싶은 소원을 가져 불국사를 처음 지었다는 기록과 삼국유사의 설화(說話) 등을 봐서는 긴 세월을 거쳐 여러 세력들에 의해 점차적으로 그 모습을 완성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했다고 나온다.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 2023.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