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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여행16

우주 만물의 배꼽(omphalos)을 꿈꾼 우암 송시열의 팔괘정 사계 김장생이 말년을 보낸 임이정에서 서북쪽을 바라보면 나즈막한 산자락에 팔괘정이라는 정자가 자리잡고 있다. 팔괘정은 우암 송시열이 그의 스승이었던 김장생과 가까이 있고 싶다는 마음으로 임이정 바로 지척에 지은 정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팔괘정은 임이정과 무척 많이 닮아 있다. 흡사 보면 쌍둥이처럼 보일 정도로 구조적으로 흡사하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형태도 그렇고, 두 칸에 마루를 놓고 나머지 한 칸을 벽으로 막아 온돌을 들인 구조도 임이정과 같다. 어차피 이번 여행이 '철학으로 읽는 옛집'에 소개되어 있는 옛집들을 찾아 나선 여행이니만큼 이번에도 건축가 함성호의 설명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그는 조선의 건축은 사실 똑같다고 얘기하고 있다. 조선의 집은 어떻게 생겼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위.. 2012. 3. 9.
얼어붙은 연못 너머 노성향교를 거닐다 명재 윤증고택 바로 옆에 노성향교가 자리잡고 있다. 지방의 관립 교육기관 격인 향교가 사대부 집과 함께 있는 것은 상당한 특이한 입지라 할 수 있겠다. 보통의 지방 문화재들이 그렇듯 이 노성향교 역시 도난 방지와 문화재 보호를 위해 대성전은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는 해도 닫힌 공간들이 많다는 것은 어쨌거나 아쉬울 따름이다. 노성향교의 역사에 대해서는 기록이 조금 엇갈린다. 어떤 기록에서는 조선 태조 7년인 1398년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화를 목적으로 처음 세워졌다고도 하고, 다른 기록을 살펴보면 고종 15년인 1897년에 창건되었다고도 한다. 충남 문화재자료 제74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성전을 비롯해 명륜당과 동재, 서재, 삼문이 남아 있다. 아주 오랜 역.. 2012. 3. 6.
수덕사 대웅전에서 부처님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다 고속도로에서 몇 km를 밟고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서둘렀는데도 수덕사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짧은 겨울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카메라만 대충 챙겨들고 대웅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의 수덕여관부터 수덕사 경내에는 볼거리들이 꽤 많지만 이날은 그저 대웅전에서 부처님을 만나뵙는 것으로 만족할 요량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날 찍은 사진들은 도무지 별 감흥이 없다. 아주 오래된 목조 건물로 유명한 수덕사 대웅전의 단아함은 언제 보아도 변함없이 좋다. 날씨도 쌀쌀하고 시간대도 그래서인지 관람객이 많지 않아 모처럼 호젓한 산사의 느낌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만이 산사의 적막함을 일깨워줬다. 한참이나 먼 거리를 한바퀴 돌아 애시당초 행선지에 없었던 .. 2012. 3. 4.
논산 개태사에서 친근한 느낌의 부처님을 만나다 충남 논산시 연호면 천호리 천하산에 있는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과 연관이 있는 절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936년 황산군(지금의 논산시 연산면)에서 후백제 신검의 항복을 받고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왕건이 후삼국 통일이 부처님의 은혜 덕분이라 여기고 이 곳에 개태사를 지었다고 한다. 여느 사찰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국도 변에서 멀지 않은 평지에 위치해 있어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 산사의 고요함을 맛보기는 어렵다.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 마침내 부처님을 만나게 되는 수고를 덜 수는 있을망정 절에 와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터에 비해 당우들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아 조금 휑한 느낌도 받게 된다. 법상종 사찰이라는 설명도 있고 조계종 소속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일주문과 극락전에 걸.. 2012. 3. 1.
예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 고택, 두계 은농재 애시당초 행선지에 올려져 있던 곳은 아니었다. 목적지는 논산의 명재 윤증 고택이었지만 가는 길에 들러 볼 수 있는 곳을 검색하다 찾아낸 곳이 바로 이곳 은농재였다. 은농재는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인 사계 김장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 후학들을 가르치며 머물렀던 곳이다. 정식 명칭은 사계고택이라 함이 옳겠다. 은농재는 사계고택의 별당으로 이 고택에는 은농재 말고도 대문채, 행랑채, 안채와 가묘가 남에서 북으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확인은 해보지 못했지만 사계고택에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고택 체험을 제공하고 있는 듯 하다. 주위로 높은 아파트가 둘러싸고 있는 형국인데, 그 아래 유서깊은 고택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사계고택이라는 힘있는 필체의 현판이 붙어 있는 대문을 지나면 정면에 나.. 2012. 2. 29.
계룡팔경의 하나인 가을 풍경이 기대되는 계룡산 갑사 실제로 가 본 갑사는 생각해 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단풍이 곱게 물든 갑사의 가을이 계룡팔경의 하나라고 할 정도로 절경이라지만 갑사 오르는 길에서 만나는 초여름의 신록 또한 동학사 계곡의 신록에 뒤질 것이 없어 보였다. 생각보다는 큰 절이었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계룡산 갑사라고 씌어진 일주문을 지나면 멋진 풍경들이 반겨준다. 수령 수백년은 훌쩍 넘은 고목들이 넉넉한 품으로 하늘을 가려 풍성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군데군데 껍질이 벗겨진 나무를 따라 담쟁이가 짝을 이뤄 하늘로 내달리고 있다. 피곤에 찌든 두 눈이 아주 호강을 하는 느낌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한참 지났지만 아직도 갑사 구석구석에는 연등이 가득이다. 알록달록한 연등의 다양한 색이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한 산과 계곡의 모습.. 2011. 6. 7.
해질 무렵 햇살처럼 따사로운 기억의 부여 무량사 몇해전 경주 서출지를 들렀다 우연히 만나게 된 무량사란 절이 있었다.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경주 무량사라는 절의 유래나 기원을 알 방법이 없었는데 그 덕분에 충남 부여에 같은 이름을 지닌 무량사를 알게 된 것도 우연이 빚어낸 필연이었을 것이다. 언제고 기회가 되면 부여 무량사에도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약속을 생각보다 빨리 지킬 수 있게 된 셈이다. 공주와 부여의 여러 곳들을 다니다보니 계획보다 시간을 지체한 탓에 무량사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시간이 다 됐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일주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이미 절 구경을 다 마친 일행이 돌아 나오고 있었다. 사방이 고요한데 일행들의 웃음소리가 적막 속에 유독 도드라지게 들렸다.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모신 가족들의 행복한 웃음소리에 내.. 2011. 6. 6.
바람결에 실려오던 종소리가 떠오르는 청양 고운식물원 충남 여행중에 칠갑산이 있는 청양을 빼놓을 수 없어 둘러볼만한 곳을 찾다 발견한 곳이 고운식물원이었다. 천문대가 유명하긴 하지만 하필이면 1박2일이 다녀간 지 얼마되지 않아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다음으로 미뤘다. 고운식물원. 일단은 이름이 참 좋다. 경북 의성에 있는 고운사란 절의 이름을 혼자 불러 볼 때마다 참 절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이곳 고운식물원도 딱 그 이름에 걸맞는 곱고 친절한 식물원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자연 그대로의 지형을 이용해 훼손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운식물원은 오르내리는 가파른 길이 많다. 산을 깎아내서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지 않다보니 당연히 사람들이 조금 더 힘든 노고를 해야 한다. 사람이 조금 힘든 대신 자연이 덜 상처를 받는 셈이니 .. 2011. 6. 5.
자연과 예술이 함께 하는 '그림이 있는 정원' 그림이 있는 정원에는 잘 가꿔진 정원이 있고,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림이 있다. 그리고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함께 하고 있는 공간이다. 충남 홍성군 광천읍 매현리 3만평의 대지를 30년간 땀으로 가꿔 지난 2005년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작은 미술관을 만나게 된다. 교통사고로 인해 구필화가로 변신한 임형재 씨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86년 단국대 관상원예학과에 입학했던 그는 이듬해 사고를 당해 혼자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다. 최고의 전통가구 명장이었던 아버지 임진호씨는 하루종일 누워 지낼 수 밖에 없던 아들을 위해 창밖 잘 보이는 자리에 소나무 두 그루를 심었고 이후 10년여의 세월이 흘러 지금과 같은 아름다운 수목원을 이.. 2011. 6. 2.
백제 무왕의 탄생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부여 궁남지 궁의 남쪽에 있는 연못이란 뜻을 지닌 부여 궁남지는 백제 사비 시대의 궁원지로 전해지고 있다. 별궁에 만들어 놓은 인공 연못이라는 얘긴데 경주에 있는 안압지와 비슷한 성격이라 이해하면 되겠다. 그런데 그 모양은 안압지와 부여 궁남지가 아주 딴판이다. 안압지를 다녀가신 분들이라면 다들 느꼈겠지만 인위적인 느낌이 상당히 강하다. 하긴 신라시대 원형을 알 수 없으니 그 복원이란 것도 정확할 순 없는 법, 현재의 모양이 안압지와 임해전의 본래 모습이라고 감히 얘기할 순 없을 것 같다. 그에 비해 궁남지는 수더분한 모습이다. 물론 여기도 경주 안압지나 부여에 있는 백제문화단지처럼 인위적인 노력을 가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화려한 모습으로 치장할 수야 있겠지만 오히려 지금 모습이 훨씬 자연스럽다. 궁남지 주변으로.. 2011. 6. 1.
1,400년전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백제문화단지 백제문화단지 조성사업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크게 볼 것이 있을까 고민하다 들렀던 곳인데 기대보다는 감흥이 크지 않았다. 볼거리도 많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흔적은 보이지만 1,400년전 백제의 숨결을 느끼기에는 부족했다. 백제역사문화관, 사비성, 한국전통문화학교, 롯데 부여리조트 등이 단지 내에 있는데 계획되어 있는 모든 시설은 2013년 말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도 규모 자체는 작은 편이 아니지만 주변이 좀 휑한 느낌인데 몇년 후면 이곳도 전혀 다른 분위기로 변할 것 같다. 구조가 좀 특이하게 되어 있고 매표소 위치가 좀 애매한 탓에 헛걸음 하는 관람객들이 꽤 있었다. 백제문화단지 관람료가 9,000원이고, 백제역사문화관만 보려면 1,500원을 내야 한다. 물론 단지 조성공사에 막대한 돈이 투입.. 2011. 5. 30.
울긋불긋 연등 속 수덕사 대웅전을 거닐다 수덕사는 오래 전부터 한번은 가보고 싶던 절이었다.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수덕사 대웅전이 있고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공주 마곡사와 더불어 충남을 대표하는 큰 절이기 때문이다. 역시 그랬다. 큰 절이고, 워낙 유명한 절이다 보니 찾는 이도 많았고 당연히 번잡했다. 넓디 넓은 주차장을 지나면 입구에서부터 수많은 식당과 상가들이 수덕사로 향하는 발걸음을 잠시 머뭇거리게 했다. 고풍스런 한자 일색인 여느 사찰과 달리 수덕사 입구의 현판은 한글로 씌어져 있어 이채롭다. 양각으로 새겨진 덕숭산 덕숭총림 수덕사란 글씨가 왠지 정겹다. 둘레가 사람 몇이 팔을 벌려도 남을 것 같은 우람한 기둥이 제일 먼저 반겨준다. 잘 정돈된 길가의 풍경이 마치 그림같다. 신록.. 2011.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