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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교동 최씨고택4

봄날처럼 따뜻했던 어느 겨울날에 찾았던 경주 최부자집 모처럼 따뜻한 봄날같은 하루였다. 일렁이던 겨울 바람도 잦아 들었고,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 상쾌함에 피곤함도 잊을 수 있었던, 이날의 갑작스럽던 경주 여행은 날씨만큼 따뜻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번이 몇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경주 교동의 최부자집은 그간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쉼없이 찾아들고 있었다. 몇해 전 겨울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는 참 을씨년스러운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건물도 들어서고 해서 활기를 띤다. 오히려 인근의 여러 공사로 인해 원래의 한적함과 고풍스러움이 오히려 퇴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 들 정도다. 경주 인근에서 이집 땅을 밟지 않고 돌아다니기 어려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최부자집의 재력은 엄청났던 것 같다. 하지만 여러 천석지기, 만석지기가 있었다 .. 2012. 1. 30.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기품을 엿볼 수 있는 경주 교동 최씨고택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은 하지 마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그 유명한 경주 최부자집의 여섯가지 가르침을 적어 놓은 것입니다. 최근에 TV CF에도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경주 살 때부터 경주 교리 최부자집 얘기는 참 많이도 들었었지요. 문화재로도 지정된 이곳의 정식 명칭은 경주 교동 최씨고택입니다. 원래 경주시 내남면에 살다가 이곳에 터를 잡은 지는 약 170년 정도가 흘렀다고 하네요. 400년 동안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지냈던 부호이자, 또한 이 지역의 명문가였습니다. 만석꾼이야 각 지방마다 한두 집안씩은 꼭 있는 법이겠지만.. 2011. 1. 31.
우리나라 향교 건물 배치의 표본 경주향교 향교라고 하면 국사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듯 지방의 중등교육기관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지방 국립대학 정도였겠죠. 조선시대에는 한양에 성균관을 두고, 지방의 중심지에는 향교를 설치했었습니다. 경주시 교동에 위치한 경주향교는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신라시대에는 수도였으니 천여년 전에는 국립대학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후에도 경주라고 하면 그래도 지방에서는 중심중에서도 중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경주향교는 경상북도 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주향교와 더불어 우리나라 향교 건물 배치의 표본이라고 하네요. 이미 이런 내용들을 알고 갔더라면 좀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도 같네요. 예전에 경주에 살때도 .. 2011. 1. 28.
생소한 이름, 익숙한 풍경 경주 사마소 사마소(司馬所)라는 단어는 참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경주 교동 최씨고택을 가기 위해 검색하다보니 인근에 경주 사마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역이나 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인 줄 알았는데 그것은 아니더군요. 사마소는 조선시대 과거에 합격한 유생들의 협의기구로 여기에서 유학을 가르치거나 정치를 토론했다고 합니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풍경은 눈에 많이 익숙합니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는데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던 것을 그 이후에 다시 세워 풍영정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풍영정 외에 그 옆에 병촉헌이 함께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습니다. 대문을 잠궈 두었던데 늘 폐쇄되어 있는 곳인지, 아니면 겨울철이라서 그런 것인지.. 2011.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