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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6

피었으므로, 진다 - 이산하 시인의 산사기행 마음이 흐트러지는 날에 산사에서 만나는 눈부신 고요와 적멸의 순간들이 한 권의 책에 스며들어 있다. 이산하 시인이 펴낸 에는 5대 적멸보궁, 3보사찰, 3대 관음성지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이름난 고찰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 한권의 책만으로도 만족스런 산사 기행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시인답게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 탐미적 허무주의 시인의 현란한 감성과 정제적 시적 사유가 돋보이는 섬세한 자기 내면 기록이라는 정호승 시인의 평이나, 섬세한 문장과 문장 사이에 놓인 촘촘한 직관의 그물은 바람의 형체를 건져내 보여주는가 하면, 눈부신 고요가 빚어내는 꿈결 같은 소리들도 우리한테 들려준다는 안도현 시인의 평가가 헛된 것이 아님을 이 책을 읽다보면 느끼게 된다. 그래서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시인.. 2017. 1. 11.
정본 백석 시집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학창시절 이후 시라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내게 백석의 시 한편은 놀라움이었다. 한편으론 신선함이었고 쓸쓸함이었으며 결국은 안타까움만 남았다. 마음을 다치고서도 그의 시집을 사고야 말았던 것은 백석이란 시인의 신비로움에 이끌렸던 탓이 크지만 그가 쓴 다른 시들은 과연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하는 궁금증도 컸었다. 사실 시를 잘 모른다. 좋은 시를 쓰는 것은 애시당초 꿈도 꾸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인의 멋진 시를 제대로 읽어내는 능력 또한 만무하다. 그럼에도 호기롭게 백석 시집을 손에 넣고야 만 무모한 열정에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끝을 알 수 없는 갈증과 결핍이 계속 나를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백석으로 더 알려졌지만 그의 본명은 백기행. 1912년 평안북도 정.. 2013. 9. 17.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 뭔가 찜찜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시인 최갑수가 이렇게 부지런할 리가 없지 않은가. 조금만 더 세심하게 살폈더라면 'Sentimental Travel' 라는 문구를 놓쳤을 리가 없다. 이미 몇해 전에 한 번 당한 적이 있던 나로서는 당혹스럽기도 하고, 한편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걸 어찌할 수가 없다. 최갑수의 신작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결국 몇 해 전에 그가 펴낸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이란 책을 다시 펴낸 것에 불과하다. 물론 '목요일의 루앙 프라방'을 사진까지 그대로 실어서 '행복이 오지 않으면 만나러 가야지'란 제목의 책으로 발간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은 "그래도 양심은 있네"라고 봐 넘어갈 만 하다. 제목은 참 마음에 든다. 언제나 그렇듯 최갑수의 책에는 시.. 2013. 7. 11.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시화선집 아름다운 시가 그림을 만났다. '접시꽃 당신'의 저자 도종환 시인이 시를 쓰고, 화가 송필용이 시 한편 한편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렸다. 흔히 시를 읽으며 떠올려지는 이미지를 나름대로 그려보곤 하는데 이 시집은 그런 수고마저 덜어주려는 것처럼 친절하다. 표지에는 풍성하니 꽉 찬 보름달을 배경삼아 수많은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듯 피어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시인의 말에 위로를 얻는다. 세상에 나 혼자만 바람에 흔들리며, 비에 젖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고마운 일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 모두는 아름답고 빛나는 꽃들로 피어났다 지는 것이니 순간순간 찾아오는 시련에 절망하지도, 잠깐 얼굴을 내민 봄햇볕에 너무 들떠하지도 말아야 겠구나. "가장 뜨거운 시간이 지나간 뒤에 더.. 2012. 8. 30.
시가 내게로 왔다 - 김용택이 사랑하는 시 자기 마음에 있는 생각들을 하나도 숨김없이 시로 드러내놓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김용택 시인은 서정주의 시 '上理果園'을 읽은 감회를 써내려가면서 시를 쓴다는 것, 시를 읽는다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자기의 마음을 한치의 어김도 없이, 조금의 가감없이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압축되고 정제된 단어를 통해 詩라는 형식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시인의 '창작의 고통'은 더 할말 필요도 없을 터. '시가 내게로 왔다'는 김용택 시인이 문학을 공부하면서 읽었던 시인의 시 들 중에서 오래동안 남아 빛나고 있는 시들을 묶어 한권의 책으로 펴낸 책이다. 박용래 시인의 '겨울밤'으로부터 서정주의 '上理果園''에 이르기까지 총 마흔아홉편의 시가 담겨 있다. 그 모두가 "시인 김용택이 사랑하고.. 2012. 8. 23.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산문집 한참 전에 사 놓고도 이제서야 책을 다 읽고 손에서 놓게 되네요. 사람들의 평이라는 게 참 무섭습니다. 책을 읽기 전 무심코 인터넷에서 접한 부정적인 서평에 선뜻 손에 잡히지가 않았었습니다. 남을 탓할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보단 "좋은 책이긴 한데, 식상한 느낌이 난다."는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짤막한 글 하나에 마음이 흔들린 저의 줏대없음이 문제였던 것이지요. 맞습니다. 좋은 책이긴 한데, 그 내용을 보면 조금 식상한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삶에 힘이 되어주는 말들이란 것이 어떤 건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것들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드는 생각입니다. 이 책은 아직은 마음에 조금의 여유가 있다거나 깊은 수렁에서 한걸음 빠져나온 사람들이 읽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마디 .. 2011.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