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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442

푸른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가 상쾌했던 죽림서원 임이정을 향해 가는 길에 죽림서원이 있다. 죽림서원과 임이정, 팔괘정은 모두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고 마치 한 셋트의 유적공원처럼 잘 정리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죽림서원은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는 아담한 모습이었다. 이 역시도 문화재 보호를 위해 문이 굳게 닫혀 있어 건물 안을 들어가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컸다. 죽림서원은 인조 4년(1626년)에 율곡 이이, 우계 성혼,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방 유생들이 세운 사당이었던 황산사가 그 기원으로 전해진다. 이후 현종 6년(1665년)에 '죽림'이라는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고 이때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을 배향하고, 이후에는 노론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까지 추가 배향하게 되었다. .. 2012. 3. 7.
얼어붙은 연못 너머 노성향교를 거닐다 명재 윤증고택 바로 옆에 노성향교가 자리잡고 있다. 지방의 관립 교육기관 격인 향교가 사대부 집과 함께 있는 것은 상당한 특이한 입지라 할 수 있겠다. 보통의 지방 문화재들이 그렇듯 이 노성향교 역시 도난 방지와 문화재 보호를 위해 대성전은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는 해도 닫힌 공간들이 많다는 것은 어쨌거나 아쉬울 따름이다. 노성향교의 역사에 대해서는 기록이 조금 엇갈린다. 어떤 기록에서는 조선 태조 7년인 1398년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화를 목적으로 처음 세워졌다고도 하고, 다른 기록을 살펴보면 고종 15년인 1897년에 창건되었다고도 한다. 충남 문화재자료 제74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성전을 비롯해 명륜당과 동재, 서재, 삼문이 남아 있다. 아주 오랜 역.. 2012. 3. 6.
수덕사 대웅전에서 부처님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다 고속도로에서 몇 km를 밟고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서둘렀는데도 수덕사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짧은 겨울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카메라만 대충 챙겨들고 대웅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의 수덕여관부터 수덕사 경내에는 볼거리들이 꽤 많지만 이날은 그저 대웅전에서 부처님을 만나뵙는 것으로 만족할 요량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날 찍은 사진들은 도무지 별 감흥이 없다. 아주 오래된 목조 건물로 유명한 수덕사 대웅전의 단아함은 언제 보아도 변함없이 좋다. 날씨도 쌀쌀하고 시간대도 그래서인지 관람객이 많지 않아 모처럼 호젓한 산사의 느낌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만이 산사의 적막함을 일깨워줬다. 한참이나 먼 거리를 한바퀴 돌아 애시당초 행선지에 없었던 .. 2012. 3. 4.
펑지에 자리잡은 돈암서원에서 여유로움과 따뜻함을 느끼다 논산, 계룡이라는 고을에서는 사계 김장생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되는 모양이다. 사계 고택 두계 은농재를 지나 논산으로 향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돈암서원 역시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의 후학들이 그를 추모하여 세운 충남지방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돈암서원은 호남에까지 그 이름을 떨쳤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그 명맥을 유지한 서원이기도 하다. 사실 돈암서원을 찾았을 때만 하더라도 그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돈암서원은 김장생 외에도 그의 아들인 김집, 송준길과 송시열의 위패를 사당에 봉안하고 있는 노론의 대표적인 서원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연산지역에 세거하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했던 광산 김씨 가문의 영향력을 느끼게 해주는 유물이 아닐까 싶다. 대구, 경북지역의 수많은 서원들을 .. 2012. 3. 3.
논산 개태사에서 친근한 느낌의 부처님을 만나다 충남 논산시 연호면 천호리 천하산에 있는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과 연관이 있는 절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936년 황산군(지금의 논산시 연산면)에서 후백제 신검의 항복을 받고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왕건이 후삼국 통일이 부처님의 은혜 덕분이라 여기고 이 곳에 개태사를 지었다고 한다. 여느 사찰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국도 변에서 멀지 않은 평지에 위치해 있어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 산사의 고요함을 맛보기는 어렵다.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 마침내 부처님을 만나게 되는 수고를 덜 수는 있을망정 절에 와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터에 비해 당우들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아 조금 휑한 느낌도 받게 된다. 법상종 사찰이라는 설명도 있고 조계종 소속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일주문과 극락전에 걸.. 2012. 3. 1.
예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 고택, 두계 은농재 애시당초 행선지에 올려져 있던 곳은 아니었다. 목적지는 논산의 명재 윤증 고택이었지만 가는 길에 들러 볼 수 있는 곳을 검색하다 찾아낸 곳이 바로 이곳 은농재였다. 은농재는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인 사계 김장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 후학들을 가르치며 머물렀던 곳이다. 정식 명칭은 사계고택이라 함이 옳겠다. 은농재는 사계고택의 별당으로 이 고택에는 은농재 말고도 대문채, 행랑채, 안채와 가묘가 남에서 북으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확인은 해보지 못했지만 사계고택에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고택 체험을 제공하고 있는 듯 하다. 주위로 높은 아파트가 둘러싸고 있는 형국인데, 그 아래 유서깊은 고택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사계고택이라는 힘있는 필체의 현판이 붙어 있는 대문을 지나면 정면에 나.. 2012. 2. 29.
봉정사의 숨겨진 보물 영산암 일상의 번잡함을 잊으려 절을 자주 찾곤 한다. 그 중에서도 안동 봉정사는 내가 자주 찾는 단골(?) 사찰 중 한 곳이다. 매번 봉정사를 찾을 때마다 단 한번도 날 실망시킨 적이 없었던 이곳도 이번에는 내가 때를 잘못 맟춘 것 같다. 하필이면 성지순례라는 이름표를 목에 건 수십명의 사람들이 봉정사를 분주히 거닐고 있었다. 산사에 오면 바람에 몸을 내맡기며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와 스님의 고요한 독경소리, 목탁 소리만이 혼탁한 속세의 소리를 잠재워 줘서 참 좋았는데 이번에는 사람들의 소리에 이 좋은 소리들이 묻혀 버리고 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극락전 아래에도, 지난해 국보로 승격된 대웅전 안에도 사람들로 가득하다. 봉정사를 찾는 사람들 중에 모르고 스쳐 지나는 곳이 한 곳 있다. 봉정사.. 2012. 2. 28.
석축의 아름다움을 통해 불국사를 다시 보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3권에서 불국사를 답사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 얘기는 불국사는 누구가 보더라도 아름다워서 꼭 한번은 보고 싶어하는 문화재라는 뜻이기도하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의 궁극 또한 바로 불국사라는 얘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실 불국사는 너무나 유명한 절이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불국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고, 그 흔한 수학여행이나 경주 여행을 통해서 생애 한번쯤은 불국사 경내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들 불국사를 잘 안다 여길 지도 모르겠다. 불국사를 와보지 않았더라도 그 유명한 다보탑과 석가탑, 청운교와 백운교 등의 이름을 줄줄이 꿸 정도니 말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인연에서였는지 경주에서 학창시절을 .. 2012. 2. 27.
따뜻하고 평안했던 '다각적 추론의 집' 명재고택 건축가 함성호의 '철학으로 읽는 옛집' 마지막에 명재 윤증고택이 소개되어 있다. 지난해 이른 봄에 충남 일대를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목적지 중의 한곳에도 이 오래된 옛집이 포함되어 있었다. 관촉사 은진미륵을 뵙고 오느라 지체했던 탓에 짧은 겨울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어 다음으로 미뤄야 했었던 그날의 아쉬움을 1년이 지난 후에야 풀 수 있었다. 명재고택을 찾았던 날은 마치 봄날 같았다. 한낮 햇볕의 너무나 따뜻했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듯 하다. 홀로 걷고 있어도 누군가가 옆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햇볕을 받아 온기가 감도는 마루에 앉아 오래된 나무의 감촉을 손으로 매만지며 그 따뜻함을 만끽하던 찰나의 행복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오래되고 말없는 것들.. 2012. 2. 26.
봄날처럼 따뜻했던 어느 겨울날에 찾았던 경주 최부자집 모처럼 따뜻한 봄날같은 하루였다. 일렁이던 겨울 바람도 잦아 들었고,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 상쾌함에 피곤함도 잊을 수 있었던, 이날의 갑작스럽던 경주 여행은 날씨만큼 따뜻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번이 몇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경주 교동의 최부자집은 그간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쉼없이 찾아들고 있었다. 몇해 전 겨울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는 참 을씨년스러운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건물도 들어서고 해서 활기를 띤다. 오히려 인근의 여러 공사로 인해 원래의 한적함과 고풍스러움이 오히려 퇴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 들 정도다. 경주 인근에서 이집 땅을 밟지 않고 돌아다니기 어려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최부자집의 재력은 엄청났던 것 같다. 하지만 여러 천석지기, 만석지기가 있었다 .. 2012. 1. 30.
시(詩)로 지어진 건축, 회재 이언적의 옛집 독락당(獨樂堂) 요즘 흥미롭게 읽고 있는 '철학으로 읽는 옛집'이란 책에 독락당이 맨 처음 소개되어 있습니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을 배향한 경주 옥산서원에 갔다 잠시 들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저 근처에 오래된 고택이 있으니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는 생각이었지 독락당이라는 건물이 지닌 가치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질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 한결같이 깊은 맛이 없습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잠시 스쳐지나 왔었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듭니다. 물론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에서 미리 외부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독락당의 깊은 곳 구석구석까지, 혹은 독락당을 만들었던 회재 선생의 철학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독락당은 24세에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2012. 1. 8.
새해 첫날, 고운사에서 절하다 새해 첫날에 의성 고운사를 찾았습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고운사를 찾아 왔지만 이날처럼 고운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 건 또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새해 첫날이라 부처님 앞에 무릎꿇고 절하러 오신 분들이 저 말고도 또 많았던 가 봅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절이지만 그래도 저 혼자 고즈넉한 산사를 여유롭게 즐기고 싶은 욕심은 또 여전합니다. 사람들과 차량의 번잡함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네요. 그래도 고운사는 모처럼 조계종 본사에 어울리는 분주함을 모처럼 되찾은 것 같아서 저의 욕심은 잠시 접어두려 합니다. 두 손을 모으고 절하는 마음은 누구나 간절한 것일테니까요. 절을 자주 찾아다니고는 하지만 예전에는 그저 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두는 것에 만족했었습니다. 무엇이 가로막았.. 2012.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