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풍경을 그리다

단종과 수양대군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세종대왕자태실

by 푸른가람 2011. 3. 20.
728x90


아마도 이 곳이 명당 자리임에는 틀림 없나 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먼 한양땅에서 성주까지 왕자들의 태를 모셔와 태실을 만들었을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을까.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 아래 태봉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세종대왕자태실은 장자인 문종을 제외한 세종대왕의 모든 왕자들의 태실과 원손이었던 단종의 태실을 한자리에 모셔두고 있는 곳이다.




이 태실은 세종 20년(1438년)부터 24년 사이에 조성되었고 전체 19기 가운데 훗날 수양대군(세조)의 즉위를 반대하였던 5왕자의 석물은 파괴된 채로 남아 있다. 민가에서는 태를 태웠으나 왕가에서는 길일을 잡아 길지에다 태를 도자기함에 묻었다고 한다. 이 태를 묻는 행렬에 5천여명의 인력이 동원되었고 그 일대 지역은 농사를 짓지 못했을 정도라고 하니 지금 생각해 보면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을 듯 하다.




원래 다른 곳에 묻혀있던 단종의 태가 훗날 이곳에 함께 모셔지게 되었는데 제일 안쪽 깊숙이 조금 외롭게 자리잡고 있다. 입구 가장 좋은 자리에 있는 세조의 태실에 비해 단종은 그 태실마저도 그의 구구절절했던 운명처럼 쓸쓸하게 느껴진다.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숙부와 그에게 쫓겨 머나먼 영월땅에 유배되어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단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참 이채로운 경험이다.




성주군에서 세종대왕자태실 주변을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이곳도 몇해 전에 비해 많이 단장된 모습이다. 기존 모습을 많이 훼손하지 않고 관람의 편의를 도모했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지금은 바로 인근에 위치해 있는 선석사에 대한 대대적인 단장이 한창이다.





이곳에 들러 조선왕조 초기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세종대왕자태실을 들러보게 된다면 선석사와 한개마을도 빠뜨리지 않는 게 좋다. 선석사는 태실수호사찰로 그 명맥을 이어왔고 한개마을은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여러 고택들이 남아 있어 찾는 이들이 많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