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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무릉도원 같았던 기청산식물원의 봄날 오후를 걷다

by 푸른가람 2012.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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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한시간이면 족한 거리에 있지만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벼르고 벼르던 차에 이번에야 겨우 기청산식물원의 봄꽃 구경을 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막상 떠나면 금방인데 그 마음 먹기가 쉽지가 않다. 한겨울 내내 언제 봄이 올까 했는데 어느새 계절은 봄의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언제 봐도 반가운 기청산식물원의 초입 풍경이다. 신록이 품어내는 푸른 빛이 싱그럽기 그지없다. 오늘따라 인적이 드물다. 이맘때면 단체로 식물원을 찾는 발길도 분주한 법인데 이상스레 고요하다. 천천히 익숙한 들머리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매표소 앞을 지나려는데 직원분이 '월요일 휴관'임을 친절히 알려 주신다.




이 식물원을 찾아온 것이 그동안 몇번인데 그 사실을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헛품만 팔고 돌아가야 하나 쭈뼛거리고 있는데 오신 김에 둘러보고 가라는 공식적인(?) 허락이 떨어졌다. 휴관일을 미리 확인하지 않았던 나의 부주의가 오히려 평일 오후에 이 넓은 기청산식물원을 마치 전세낸 듯 혼자 둘러보는 호사를 누리게 된 셈이다.



몇해전 야생화 공부를 해볼 생각으로 이 곳을 자주 찾았을 때만 해도 이런저런 꽃이름은 꿰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 가물가물하다. 모습은 익숙한데 이름이 입안에서 맴돌다 만다. 그래도 금낭화, 동의나물, 종지나물, 할미꽃, 앵초, 양지꽃 등 수많은 봄꽃들이 구석구석에서 간만에 찾아온 이를 반갑게 반겨주는 듯 하다.



머나먼 남도의 땅끝에서 만나는 동백꽃이나 이 곳에서 보는 동백꽃이나 반갑기는 매 한가지다. 붉디 붉은 동백꽃은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보다 땅에 떨어져 그 생명이 사위어갈 때 더욱 더 강렬한 색으로 불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동백꽃을 보며 그 생명이 다하더라도 그 모습이 추하지 않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새삼 얻게 된다.




기청산은 껍질을 날려 버리고 알곡을 골라내는 농기구인 키를 가르키는 '기'와 우리 조상들이 동경하던 세상인 유토피아를 가르키는 '청산'을 합한 말이다. 깊어가는 봄날 오후의 노곤한 햇살이 따갑지 않았던 것은 때맞춰 불어주는 바람 덕분이었고, 홀로 걷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클래식의 선율이 발길을 따라 나와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기청산식물원에 가면 많은 꽃과 나무를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이 있지만 내게는 이 곳에 올 때마다 맛보게 되는 또다른 설레임이 있다. 재롱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고양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3년전 처음 이 식물원을 찾았을 때 우연히 내 눈앞에 나타난 이후 내가 식물원에 가게 되면 우연처럼 늘 만나게 되는 오랜 친구같은 녀석이기도 하다.



봄꽃 구경은 못하더라도 저는 꼭 보고 갔으면 좋겠다는 내 마음을 재롱이가 알아차렸든지 식물원 구경을 다 마치고 나오는 길가에서 이 녀석은 곤한 낮잠에 빠져 있었다. 얼마 전에 다친 발은 아직 다 낫지 않은 것 같았다. 상처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는 늙어버린 육신의 피곤함 탓인지 옆에서 깨우고 머리를 쓰다듬어도 좀처럼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몇번 눈이 마주쳤지만 귀찮다는 듯 돌아눕는 녀석이 야속하기 보다는 그저 안스럽기만 하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흐르는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일테지. 그래도 다친 발이 어서 나아서 뱀과 맞장을 뜨던 용맹함과 식물원 손님들에게 보여주던 재롱을 다시 볼 수 있었음 하는 마음을 전해주고 기청산의 푸른 숲을 되돌아 나왔다. 







기청산식물원 소개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기청산식물원은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에 위치한 동해안에서 유일한 사설 식물원으로 이삼우 원장이 1969년에 설립한 기청산농원이 그 전신이다. 식물학 연구와 전시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 이 식물원의 설립 목표다. 기청산의 '기'는 좋은 곡식을 골란내는 키를 뜻하고, '청산'은 사람들이 꿈꾸는 무릉도원, 유토피아를 뜻한다.

2002년 11월 4일 산림청에 등록하였고 전체 면적 9ha, 등록 면적 5ha이며, 한국의 야생화, 토종수목 등 총 2,100여종을 보유하고 있다. 멸종위기의 식물을 보전, 증식, 복원하는데 힘써 2004년 3월 22일 환경부로부터 서식지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되었다. 식물원 관람은 2000년 봄부터 회원에게만 개방되었다가 2008년 7월 1일 일반인에게 유료로 개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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