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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시(詩)로 지어진 건축, 회재 이언적의 옛집 독락당(獨樂堂)

by 푸른가람 2012.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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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흥미롭게 읽고 있는 '철학으로 읽는 옛집'이란 책에 독락당이 맨 처음 소개되어 있습니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을 배향한 경주 옥산서원에 갔다 잠시 들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저 근처에 오래된 고택이 있으니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는 생각이었지 독락당이라는 건물이 지닌 가치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질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 한결같이 깊은 맛이 없습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잠시 스쳐지나 왔었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듭니다. 물론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에서 미리 외부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독락당의 깊은 곳 구석구석까지, 혹은 독락당을 만들었던 회재 선생의 철학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독락당은 24세에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등용되자마자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승승장구하던 회재 이언적이 중종 25년 김안로 일파의 탄핵을 받아 벼슬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내려와 패배감과 세상에 대한 울분을 안고 지은 집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우한 자신의 현실을 자연 속에서 시와 철학으로 승화시킨 조선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집 중에 하나라고 책의 저자는 극찬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잘은 모르겠습니다. 독락당 전체를 다 둘러본다 한들 철학적 소양이 부족하고 건축학적 미학도 없는 제게 이 건물은 그저 오래된 목조건축물 중의 하나에 그칠 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담장에 작은 문을 내어서 폐쇄된 공간 속에서도 바깥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둔 모습인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하나 독락당 바로 옆으로 흐르는 자계천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 건축의 묘미는 역시 별개의 구조물로서가 아닌 자연 속에 동화되어, 그 속에 녹아드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또하나의 자연이 되는 모습. 바로 그것이 우리 조상들의 삶의 방식이었을 겁니다.



건축은 언어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독락당의 건축가 회재 선생은 냇가에 널린 바위 덩어리에 아름다운 이름을 붙이고 불러주었습니다. 사산오대(四山五臺)라고 불리는 독락당 주변의 산과 냇가의 바위들은 거기에 이름을 붙이자마자 그대로 큰 동산이 되고 정자가 되었습니다. 다음번에 독락당을 다시 찾을 때는 그 속에 숨어있는 옛 선인의 자취를 잘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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