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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어느 휘량(輝凉)한 가을날의 원주 구룡사

by 푸른가람 2011.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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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참 좋아합니다. 원래 태어난 달이 10월이기도 하거니와 사물을 더욱 풍성하고 돋보이게 해주는 가을 빛과 서늘한 바람이 한량없이 좋기 때문입니다. 마침 딱 그런 휘량(輝凉)한 가을날에 오래전부터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원주 구룡사를 찾았습니다. 가을날에는 어떤 곳을 가도 만족감을 느낄 법하지만 이날의 날씨는 환상적이었다라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네요.



구룡사에 대해서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있지만, 그 근처를 여러 번 지나면서도 또 이상하게 저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매번 다음 기회로 미루다가 그렇게 2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다소 즉흥적인 선택이었지만 이 좋은 가을날에 구룡사를 가기 않았더라면 많이 후회할 뻔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구룡사라는 절 보다는 구룡사에 이르는 그 상쾌하고 서늘한 숲길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시원스런 물소리가 들리는 계곡을 끼고 절에 이르는 그리 길지 않은 숲길에는 잘 자란 나무들이 서로 어깨동무하듯 펼쳐져 있습니다. 이런 좋은 숲길에 오면 늘 가슴이 탁 트이는 청량한 느낌이 들어 참 좋습니다. 늘 이런 곳에서 살면 그 어떤 번뇌도 사라질 것만 같은.



원통문을 시작으로 절에 들어서게 됩니다. 일주문이라는 것이 속세와 절의 경계인 것인데 원통문이 서 있는 것은 그 많은 절을 다녀봐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숲길은 평탄하고 흙길은 너무나 부드럽습니다. 의성 고운사 숲길이 바로 이런 느낌이기도 하지요. 걷고 또 걷고 싶은 그런 길입니다. 숲이 시원스런 그늘을 만들어 줘서 한여름에도 더울 것 같지가 않네요.


아름다운 숲길을 음미하듯 걸어 오르면 구룡사 경내에 들어서게 됩니다. 구룡사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아담하더군요.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보니 여타 사찰과 마찬가지로 단을 이루어 건물들이 들어서다 보니 아래에서 위를 보면 다소 위압적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대웅전 앞 보광루에 앉아 맞은편 산을 바라보는 느낌이 시원스레 좋습니다.


구룡사 소개를 안할 수가 없겠지요. 구룡사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치악산 비로봉 구룡소에 있는 절로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입니다. 신라시대의 고승인 의상대사가 문무왕 8년(668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절이 지어질 당시의 이름은 구룡사(九龍寺)였습니다.




아홉마리 용에 관한 전설이 있었기 때문에 구룡사라 불리다가 조선 중기 이후 지금과 같이 거북 구자를 쓰는 구룡사(龜龍寺)로 바뀌었는데, 절 입구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네요. 용이 아홉마리든, 거북과 용이 있어서든 구룡사는 용을 빼고는 얘기할 수가 없겠네요.



지금 남아 있는 당우는 대웅전, 보광루, 삼성각, 심검당 등으로 아담한 규모입니다만 이곳도 공사가 한창인 것을 보니 또 여러 해가 지나면 지금과 다른 느낌의 절로 바뀔 지도 모르겠습니다. 구룡사를 와서 조금 놀랐던 것이 천왕문 바로 앞 구룡사 오르는 길목에 커피가게가 있다는 점이이었습니다. 전통찻집이야 절에서 자주 봤지만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를 파는 커피전문점이라니.




구룡소가 치악산 오르는 길목에 아담하니 자리잡고 있습니다. 물이 맑고도 무척 시원합니다. 해질 무렵 서늘한 바람이 부니 잠시 손을 담고 있기도 힘들 정도네요. 구룡소의 물이 아래로 흘러 잠시 너른 계곡이 펼쳐 집니다. 한여름이면 잠시 쉬면서 땀을 식혀가도 좋겠고, 지금쯤이면 아마도 울긋불긋한 단풍이 물들어 환상적인 풍경을 뽐내고 있을 것 같네요.





돌아 내려오기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짧아진 해가 벌써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가을 햇볕이 따사롭습니다. 아무래도 구룡사는 오후 보다는 해뜨기 전 일찍 도착해야 진면목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서늘한, 그날도 그렇게 휘량한 가을날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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