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첫날이었다. 휴가라고 해봐야 겨우 사흘에 불과하니 큰 의미는 없겠지만 그래도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경주로 향했다. 어차피 행선지를 정하고 출발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맘때면 서출지에 연꽃이 필 때가 되었겠지 싶어 금방이라도 산에 걸려 있는 구름 속에서 폭우가 쏟아질 것 같은 남산 밑 서출지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주변이 휑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사람들이 없었던 게 아니다. 7월부터 피기 시작해서 9월까지 핀다는 서출지의 연꽃은 아직 철이 일렀다. 연못 한가운데에 조금 일찍 꽃망울을 터뜨린 녀석들이 몇 보이긴 했지만 아직 며칠은 더 기다려줘야 할 것 같다. 연꽃 대신 배롱나무꽃이 지천이라 다행스러웠다. 지난해 봄 이곳을 찾았을 때는 노란 개나리들이 날 반겼었는데.
예전 경주에 살 때 왜 이런 곳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나..막상 경주를 떠나고 나서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노천 박물관이라는 별명처럼 경주에는 평생 돌아다녀도 다 못 볼 만큼 많은 문화재와 역사적인 명소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데 그곳에 살 때는 늘상 지나면서 마주치게 되는 그런 것들의 소중함을 미처 알지 못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경주 서출지에 연꽃이 활짝 피어 났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 먼 거리도 아닌데 막상 한번 떠나는 게 그리 쉽지만도 않다. 만개한 연꽃을 제대로 보려면 또 일년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기다리면, 계절이 한번 순환하면 반드시 만날 수 있다는 기약이 있으니 고맙다. 인간세상은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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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이 만개한 경주 서출지의 장관, 올해는 꼭 담아보자 http://kangks72.tistory.com/310
봄날의 서출지에서 황홀한 연꽃을 기다리며 http://kangks72.tistory.com/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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